따로국밥에 소주 한 잔
지난 수업에서 나의 바보스런 모습을 잊게 할 만큼 좋았던 점이 있다. 드럼은 이론 수업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악보를 읽고 칠 수 있도록 간단하게나마 의미를 풀어내는 과정이 있다. 이게 그거구나 절로 끄덕여진 걸 보니 선생님의 설명이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취기가 올라오듯 흥미를 더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빨리 혼자 연습을 하고 싶어서 또 안달이 났다.
어서 와 바보가 될 준비는 됐겠지? 이번에도 멋모른 채 나는 지하실로 기어들어 갔다. 과거 내 집처럼 드나들던 남편의 합주실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와는 별개로 드럼 세트에 있는 내 몸뚱이가 고생을 하게 될 줄을 모르고 연습실 방 문을 굳게 닫았다. 처음은 못하는 게 당연해라고 말해준 남편의 말을 상기하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열 번 중 한 번 될까 말까 하는 연습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현타와 성취의 줄다리기 속에 답답함이 쌓여갔다. 그러다 문득 머리 따로 몸 따로 따로국밥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따로국밥은 밥 따로 국 따로 나온다 해서 생긴 이름인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어쩐지 이 순간만큼 애먼 사람을 잡듯 이러다 먹기 싫어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을 나섰다.
터벅대며 집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40대는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진짜 그런가? 잊고 있었던 추억 하나가 내 발을 멈추게 했다.
‘니 따로국밥 무 봤나?’
‘무러 갈래?’
그날 남편은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고 배고픔과 사투 끝에 나와 데이트를 했을 때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졸래졸래 따라갔던 어느 작은 국밥집, 스르륵 문을 열자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만 눈에 띄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나는 왠지 모르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르신들만 계신 곳이라 엄숙한 공기가 부담스러운 이유였다. 시시덕거리는 건 실례가 될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정적을 깼다.
‘주문 뭐 하실래요?’
발랄한 이모님의 목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내적친밀감이 상승했다. 주문한 국밥을 테이블로 내려놓으며 다진 마늘, 부추, 국수사리를 넣어 먹으라고 일러두셨다. 원체 생소한 음식에 겁이 많아 국수사리만 넣어 먹었다. 익숙해지면 마늘을 소량 넣어 먹고 그다음은 부추를 넣는 식으로 차츰차츰 맛의 조화를 이루어 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었지 하고 그제야 알아차렸다. 다음 연습에는 다진 마늘이 조금 필요하겠군.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친 내 표정을 보니 실웃음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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