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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글쓰기를 미루는 중입니다

바쁜 일상 속 글쓰기를 미루는 3가지 심리적 이유

by 윤채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는 내일도 쓸 수 있다




주말 내내 '써야지, 써야지' 다짐만 하다가, 겨우 키보드 앞에 앉았다. 불꽃집필단 OT 구상, 가족 모임, 갑작스레 생긴 일정까지. 겉으로는 이유가 충분했다. 하지만 웹소설 원고를 미룬 건 결국 내 몫이었다. 웹소설 작가지만, 여전히 글 앞에서는 망설이고 물러선다. 그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했건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새 늦은 저녁이다. 조카와 노는 시간을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머릿속에서는 마감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조카가 잠든 뒤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커서는 말없이 깜빡일 뿐 문장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늘은 구상만 해도 잘한 거야."

"내일 쓰면 돼. 하루에 2만 자도 써봤잖아."

"지금 이 상태로는 써봤자 별로일 거야."



이런 말들은 논리적이고 친절했다. 때론 나를 지켜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실패하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스스로를 감싸는 방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아무리 뜻깊은 하루였어도, 또 한 번 글을 미뤘다는 사실은 나를 짓눌렀다.



더 아이러니한 건, 정작 그렇게 기다리던 '글 쓸 시간'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손꼽아 기다렸던 고요한 순간인데도, 막상 그 시간이 찾아오면 손끝이 떨리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을 땐 그저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생각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몇 년간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그런 나를 억지로 밀어붙이기보다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이 나를 멈추게 하는지를 천천히 관찰했고, 그 마음을 일기장에 기록하며 방향을 잡는다.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을 때, 답답한 마음을 안고 심리학 책들을 뒤적이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글쓰기를 자꾸 미루게 되는 건,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시간 관리 실패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아주 인간적인 심리적 이유들이 나를 멈추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완벽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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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쓰는 거 제대로 써야지."


이 생각이 글을 붙잡기도 전에 손을 멈추게 만든다. 처음부터 완성도 높은 장면을 써야 한다는 압박, 첫 문장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강박, 내가 쓰는 글이 '좋은 글'이어야 한다는 기준. 이 모든 것이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든다.



완벽주의는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내가 쓴 글이 별로일까 봐, 혹시 이번에도 실패할까 봐, 누군가에게 실망을 줄까 봐,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 나는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결국 '쓰지 않음'을 선택하곤 했다.




둘째,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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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행위는 생각보다 용기를 요구한다. 단지 단어를 나열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엔 '나'가 고스란히 들어간다. 그래서일까.



"피곤한데, 지금 당장 이걸 써서 뭐가 달라지겠어?"



이렇게 생각하며 글쓰기의 결과를 상상할수록 불안이 앞선다. 부정적인 반응, 무관심, 혹은 아무 반응도 없는 공백. 좋지 못한 컨디션에서 쓴 글의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나는 글을 쓰기보다 상상 속에서 피하고 있었다.




셋째, 글쓰기를 '해야 할 일'로 여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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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좋아서 썼다. 즐거워서 시작했던 글이 어느 순간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해야 하니까 앉고, 써야 하니까 억지로 단어를 쥐어짠다. 그럴수록 글은 쓰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즐거움은 점점 멀어진다.



내가 원해서 시작했던 글인데, 어느새 루틴, 성과, 마감이 전부가 되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글을 피하고 있었다. 해야 하니까, 쓰기 싫어졌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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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자꾸 미루는 건 의지 부족이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안에는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었고, 결과가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즐거움보다 의무가 앞서는 슬픈 현실도 있었다. 그걸 알아차린 뒤로, 나는 미루는 나를 탓하기보다 그 마음 하나하나를 조용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처럼 무작정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고, 마음이 닫히는 순간엔 잠시 멈춰 그 감정을 먼저 써본다. 억지로 원고를 쓰기보다, 그날의 나를 있는 그대로 적어본다. 나를 쓰는 글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문장이 되지 않아도, 마음은 흐르기 시작한다.



오늘 당신도 글을 미뤘다면, 괜찮다. 그 안에는 어쩌면 당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는 내일도 다시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오늘 당신이 적는 단 한 줄에서 시작된다.





● 자신의 간계를 더는 위장할 수 없을 때는 오히려 수법을 털어놓아라. -로버트 그린

● 당신의 이름만이 내 원수랍니다. 몬터규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당신은 당신이죠. ~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그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향기는 똑같이 달콤할 거예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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