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혹시, 작가병에 걸린 건 아닐까?

작가병 주요 증상과 그 심리적 원인

by 윤채


글을 쓴다는 일은 본래 외로운 여정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문장을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글을 응원하는 자리에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나 역시 여러 모임을 통해 다양한 작가들과 창작의 시간을 공유한 적 있다. 그중에는 오랜 인연으로 남은 사람도 있었고, 스치듯 지나간 만남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스쳐 간 사람들 중 몇몇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글보다 태도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 피드백을 명목 삼아 자아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 정작 글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작가라는 정체성’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 겉모습은 달랐지만,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유형은 다르되 본질은 같다는 점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보다 '작가인 나'라는 정체성에 몰입해 있었다. 사실 나는 '작가병'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단정적이고, 듣는 사람에게는 쉽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 말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안쓰럽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들의 글에 개입할 수도 없고 그 태도를 바꾸게 만들 수도 없다. 결국은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경험은 내게 오래도록 반면교사가 되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한 가지는 분명히 배웠다. 작가라는 이름은 글이 아니라 태도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A4책표지 (1).png




작가병이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실제 글쓰기보다는 태도와 자아도취에 중심을 둔 상태.




주요 증상

- 글보다 작가처럼 보이는 태도에 집착한다. 말과 행동에 나는 작가다라는 이미지가 과도하게 드러난다.

- 정작 글은 거의 쓰지 않으면서, 피드백 자리에서는 비난에 가까운 비판이나 근거 없는 이론을 내세운다.

- 피드백을 글에 대한 조언이 아닌,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며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 마감이나 연습보다 피상적인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며, 글쓰기를 자주 미룬다.

- 글을 끝까지 쓰지 않고, 시작만 반복하거나 쓰지 못한 이유를 포장한다.




왜 문제가 될까?

'쓰기'는 사라지고 '되고 싶은 사람'만 남기 때문이자. 창작자의 겉모습은 유지되지만, 실제 창작은 멈춘 상태가 된다.




왜 작가병에 걸릴까?

1. ‘작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갈망

-스스로를 작가로 불러야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정체성의 선언이 실제 행동보다 앞선다.


2. 결과 중심 사고

-좋은 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빨리 쓰고 싶어 하다 보니 과정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피드백을 듣기보다 평가받는 느낌을 더 크게 느낀다.


3. 인정 욕구

-글쓰기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감정이 흔들리고 '보여주기' 중심으로 흐른다.


4.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글을 완성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완성했는데도 별로일까 봐' 생기는 자기 방어다. 시작만 반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5. 혼자라는 외로움

-창작은 본질적으로 고독한데, 이를 피하고자 관계와 모임에 의존하게 되면, 그 안에서 '작가의 흉내'만 반복하게 된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