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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스키 Oct 11. 2022

초밥 먹고 싶으면 아빠한테 연락해

비건 사람 친구입니다 ep. 영양솥밥


“네가 무슨 채식이야, 고기 먹어야지 비실비실한 녀석이”


5년 만에 만난 아빠는 한결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화법을 구사했고 여느 때와 같이 만날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식당은 동네에서 제일 커다랗고 붐비는 소갈비집이었다. 나는 길 한복판에 서서 비건을 지향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마음가짐인지 설명해야 했다.






아빠는 열여덟부터 주방에서 설거지와 식재료 손질을 하며 칼을 배웠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한 가지 일만을 해왔다. 매일같이 새하얀 유니폼을 입고 위로 길게 각이 잡힌 모자를 쓰는 아빠는 사장이 되는 길보다 주방장으로 사는 길을 택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주방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다듬을 때 주방에 불을 켜고 기다란 나무 도마 앞에 서서 자세를 바르게 할 때 나는 아빠가 지닌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얼마나 높은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갓 이유식을 뗐을 때부터 광어, 참치를 비롯한 회를 먹었다고 들었다. 늦은 밤 귀가한 아빠가 현관문을 열면 수산 시장에서 날 법한 냄새가 현관을 넘어 들어왔고 나는 그 냄새에 어떤 시간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익숙해졌다.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부터는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했고 나는 때맞춰 식사가 가능한 아빠의 일터에 맡겨졌다.


아빠의 식당 근처에는 안경 가게, 화원, 보습학원 등이 있었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들을 순방하며 지루함을 달래곤 했다. 특히 직원 없이 종일 혼자 일하는 화원 아주머니는 나의 방문을 참 살갑게 반겨주었다. 어떤 꽃을 가리켜 물어도 척척 대답해주는 아주머니는 박사님 같았고 나는 어떤 식물에든 아주머니의 정성이 담겨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져 식당으로 돌아갈 때면 재료 준비로 분주한 주방에서 팔딱거리며 죽어가는 해양 생물들을 보게 됐다. 그들의 아가미나 몸통에 묵직한 식칼이 들어가는 순간과 아빠가 신은 짙은 파란색 장화에 검붉은 핏방울이 튀기는 순간을 목도하게 됐다. 그런 순간들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잘 잊히지는 않았다.


 아빠의 휴일은 당시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쉬는 일요일, 단 하루뿐이었고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할 수 있는 때는 일요일 저녁뿐이었다. 아빠는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는 고깃집을 고집했고 때로는 목살, 때로는 삼겹살을 먹었지만 우리 가족의 일요일 저녁 메뉴는 대체로 갈비였다.

 한창 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나는 갈비든 삼겹살이든 불판에서 익어가는 족족 입으로 가져갔고 아빠는 반주를 위해 늘 1인분을 더 시켜야 했다. “여기 갈비 1인분 추가요” 하고 외치는 아빠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실려 있었던 것 같다.






나 : 역 근처에 메밀국숫집 있는데 거기로 가자. 거기 국수 맛있어

아빠 : 국수는 무슨 국수야, 오랜만에 만나서

나 : 그럼 이 앞에 두부집 가서 전골 먹자. 두부버섯전골

아빠 : 그냥 고기 먹어. 벌써 예약도 해놨어. 가자


검색해 온 모든 정보를 들이밀었지만 아빠는 완강했다. 한옥처럼 지어진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1층 로비에 대기하는 손님들을 위한 커피 머신과 음료 자판기, 갈비탕과 삼계탕 밀키트가 가득 채워진 냉동 쇼케이스가 줄을 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데스크 옆 대형 모니터에는 ‘현재 22팀이 대기 중입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주십시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거대하고 윤이 나는 목재 계단을 오르며 벽에 걸린 메뉴판을 열심히 훑어봤다. 소, 돼지가 주요 식재료로 쓰이는 거대 식당의 매출에 기여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아빠의 뒷모습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된 이상 나의 점심 한 끼니라도 안전하게 사수해야 했다. 다행히 식사 메뉴에 영양돌솥밥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빳빳하게 잘 다려진 셔츠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아빠는 가장 앞 페이지를 보며 “한우로 먹자, 비싸도 한우가 좋아” 했다. 나는 삐질삐질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알았으니까 제발 1인분만 시켜주세요” 했다.


직원 : 어떤 걸로 드릴까요 손님?

아빠 : 소갈비 2인분, 한우로 주시고요. 식사는 비빔냉면으로 주십시오. 너는?


직원이 펜을 든 손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으므로 나는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했다.


나 : 저는 영양솥밥 먹을 건데요, 고기 나올 때 같이 주세요. 고기는 2인분 아니라 1인분으로 주시고요, 아 그리고 된장찌개에 해물 빼주세요.

아빠 : 1인분 아닙니다. 2인분으로 주세요. 참, 청하 한 병도 부탁드립니다.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내 말을 정정했다. 직원이 메모하던 손을 멈추고 난처한 듯 미소를 지으며 아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빠가 괜찮다는 듯 끄덕이며 한 손으로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 개를 올려 보였다. “2인분이요, 2인분!” 직원은 내 쪽을 한 번 살피더니 “네. 2인분으로 가져오겠습니다” 하고는 주문서가 꽂힌 가죽 홀더를 아빠 쪽 테이블 모서리에 놓았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딱 붙이고 앉아 자세를 곧게 폈다. 물을 마셔도 얹힐 것 같았다. 아빠는 소식하는 편이다. 2인분은 분명 남을 것이다. 고깃집에서 소비하는 것도 모자라 낭비까지 하게 생겼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화로가 나왔고 소갈비 2인분과 식사용 반찬들이 카트에 실려와 식탁으로 차례차례 옮겨졌다. 나는 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 겉절이, 멸치볶음을 아빠 앞쪽에 놓고 샐러드와 명이나물을 내 앞에 놓았다. 곧이어 영양솥밥과 된장찌개가 나왔고 나는 된장찌개에 해물이 빠져 있는지 확인한 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다.


코앞에서 생살이 싹둑싹둑 잘리고 있었다. 고역이었다. 새빨간 살점들이 핏물을 떨어트리며 불길을 일으켰다. 보기가 힘들었다. 어릴 땐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에 이런 감정이 든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침이 고이는 게 아니라 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식욕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밥을 입안에 떠 넣은 뒤 된장찌개 국물로 삼키길 반복했다.


아빠는 “이거 잘 익었다” 하며 고기 한 점을 내 밥그릇 쪽으로 가져왔다.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늦어버렸고 고기는 내 밥그릇 안에 놓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기와 핏물이 스며든 밥알까지 깊숙이 숟가락으로 떠 앞 접시에 옮겼다.


아빠 :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잖아, 밖에서 열심히 지키고 오늘은 그냥 먹어

나 : 다른 사람 아니라 나랑 한 약속이야, 안 먹을 거야


아빠는 두어 차례 더 내 밥그릇 위에 고기를 놓았고 나는 고기가 올려진 밥을 앞 접시에 덜어내길 반복했다. 그러자 아빠는 체념한 듯 말했다.


아빠 : 너 진짜 안 먹네. 그렇게 고기 사달라고 조르던 애가. 고기를 안 먹어.

나 : 안 먹은 지 꽤 됐어. 아까 열심히 설명했잖아요.


아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보았다.


아빠 : 신기한 애네. 생선도 안 먹는다고?

나 : 응

아빠 : 근데 아빠가 알아. 생선은 고통 못 느낀다 그랬어. 그니까 생선은 먹어


언젠가 비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을 때 접했던 글이 떠올랐다. 해양 생물이 우리에게 익숙한 표정이나 목소리가 없다고 해서 고통을 못 느낀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사고라는 문장, 그리고 그 대목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던 기분. 그러나 나는 움찔거리는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아빠가 평생에 걸쳐 일을 해오는 동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믿음이었던 것 같아서. 나는 그들이 통증을 느낀다고 상상할 수 있으니 소비하지 않길 택할 수 있지만 아빠한테는 그 생각을 바꾸는 것 자체가 엄청난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빠 : 너 벌써 4년이나 됐다고? 그럼 초밥 안 먹고 싶어? 생각 안 나?

나 : 생각나지. 가끔 생각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빠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빠는 술 한 모금에 고기 한 점. 술병이 빌 때까지 말없이 술잔을 채우고 상추에 고기를 올려 쌈을 쌌다. 식사로 나오기로 했던 비빔냉면을 취소하고 내가 앞 접시에 덜어 놓은 밥을 가져가 비운 뒤 “일어나자” 했다. 역시 1인분만큼의 벌건 살점이 덩어리째 남아버렸다. 속이 갑갑했다.







한사코 걸어가겠다는 아빠를 겨우 설득해서 출발했다. 아빠가 사는 집까지는 차로 5분 거리였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가 재차 물었다.


아빠 : 근데 네가 왜 그렇게까지 하냐? 골고루 챙겨 먹지 몸도 약한 게

나 : 동물 위하는 것도 있지만 지구 환경에도 이게 더 나은 방식이야


아빠 : 환경? 기후위기 뭐 이런 거냐?

나 : 응. 식사만 비건으로 해도 탄소 배출 줄이는 데 엄청 도움이 돼


아빠 : 아빠도 뉴스에서 많이 봤다 기후위기. 석유, 플라스틱 덜 쓰고 그러는 거지

나 : 응. 먹는 거, 에너지 쓰는 거 그런 게 다 기후재난이랑 연결돼 있어


아빠는 어떤 인과관계든 논리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에 환경 측면의 이유가 더 납득이 되는 듯 보였다. 익숙한 터널을 지나 삼거리를 지났다. 6년을 다닌 초등학교 담벼락을 지나 길 끝에 집이 있는 언덕을 올랐다. 어릴 땐 이 언덕을 오르는 게 그렇게 길고 힘들게 느껴졌는데 오랜만에 다시 본 언덕은 그렇게 길지도 거대하지도 않았다.


아빠 : 지금 쓴다는 글도 그런 거 쓰는 거냐

나 : 응. 많이 알려야지, 혼자서는 힘드니까


집 앞에 차를 멈추고 비상 깜빡이를 켰다. 조수석에 탄 아빠가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어 내렸다. 나는 “들어가” 하고 손을 흔들었다.


아빠 : 네가 어떤 글 쓰는지 무슨 공부하는지 아빠한테도 좀 알려줘. 아빠는 잘 모르니까.

나 : 당연하지. 만날 때마다 조금씩 알려줄게.


아빠는 문을 닫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창문을 내려 얼른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종종 보자. 초밥 먹고 싶으면 아빠한테 얘기하고"









커버 사진 : 당시 영양솥밥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럴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메뉴판 한 켠에 영양솥밥이 있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안도했던 것 같습니다. 대신 사진은 최근에 친구가 만들어준 영양솥밥입니다. 비건인 친구를 위해 채소와 버섯을 썰고 따끈한 밥을 지어준 고마운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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