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이 글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7장 '밤하늘의 등뼈'를 읽고 요약하여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과 우주를 종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였다. 하늘과 땅, 천둥과 번개, 물과 불, 시간 등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수 천 년 동안 이 세계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들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500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신이 만든 것이라는 믿음을 잠시 내려놓고, 관찰을 통해 자연과 우주가 갖는 비밀들을 하나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주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우주의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이전에는 없었던 이러한 사고 혁명이 이오니아에서 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오니아는 여러 섬들의 중심에 위치하여 여러 문명으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로써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한 환경은 다양한 정치 체계의 발달로 이어졌으며, 이는 강력한 중앙 집권 권력의 부재와 함께 곧 종교적인 영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이오니아는 과학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이오니아 인들은 신(God) 없이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원리의 힘과 법칙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발견으로 이어졌다. 탈레스가 등장하여 유클리드보다 앞서 기하학을 증명하였으며, 아낙시만드로스는 그리스 최초로 해시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별자리를 나타낸 천구도 또한 만들었다.
엠페도클레스는 빛의 속도는 결코 무한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생물 종의 생존에 대해 연구하며 다윈보다 앞서 진화론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였다. 데모크리토스는 원뿔의 부피를 계산하는 법을 고안하며 미적분 개념의 코앞까지 도달하기도 하였다. 약 2500년 전에 발견된 이 모든 성과는 관찰, 관측과 실험을 통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과학 탐구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학 탐구 정신은 피타고라스의 등장과 함께 꺾이기 시작한다. 피타고라스는 관측과 실험에 따라 대상을 이해하는 과학과 달리, 순수한 사고를 통한 수학적 추론으로 자연을 이해하려고 했다. 이러한 관념은 플라톤에 이어져 이데아로 확장되었으며, 이는 결국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들은 다양한 관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같은 종교적 경직성 때문에 피타고라스학파는 자신들의 오류를 고쳐나갈 수 없었다.
이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통해서 루트 2라는 무리수를 발견했음에도 이것을 위험 요소로 간주했다. 무리수는 그들의 세계관에서 오류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요한 수학적 발견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으며, 점점 고립되고 고여가는 선택을 반복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구를 완전한 존재로 여겨 지구 또한 완전한 구 형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 또한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결론적으로 천문학은 기독교 아래에서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발전을 지체하게 되었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자신들의 입지를 흔드는 요소들을 억제하고 사회 문제들을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류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다행히도 이러한 사상은 3세기 후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서 깨지기 시작한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고, 모든 행성은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미 약 1,800년 전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밝혀졌던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통찰은 우주에서 지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인류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관점이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 경제학, 정치학에서의 큰 발전을 이끌어왔다.
우리는 은하 변방에서도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위치한 아주 보잘것없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은하 또한 대단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더 큰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필수 전제가 된다.
만약 지구가 우주에서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구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며, 결국 우리 자신의 가치 또한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인류 문명은 자기 객관화를 올바르게 해냄으로써 문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과학 탐구는 관측과 실험을 통해서 무엇이 올바른지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과정으로 답을 찾아낸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발견하면 오류를 빠르게 인정하고 최선이라 믿는 것을 믿기 시작한다. 인류는 과학을 통해서 자기 객관화를 시작했다.
종교의 관점으로만 세계를 바라봤다면 문명의 발전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발전이 더뎠을 것이다. 신이 창조한 이 세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신이 만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종교적인 가르침을 통해 성숙해지기 위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여전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을 것이며, 그렇게 2025년을 맞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객관적인 사실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를 포함한 여러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7장에서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큰 성장을 이뤄내도록 돕는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성장을 원한다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객관화가 안된다는 것은 마치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배를 타고 나아가는 것과 같다.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결코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자기 객관화는 2가지 특성을 갖는다.
1.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
2. 내가 존재한 곳에서의 현재 내 위치
첫 번째로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가? 이것이 삶에서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결과에 다가가기 위해서 현재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내가 존재한 곳에서의 현재 내 위치다. 쉽게 말해서 내가 현재 서울에 있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부산이라고 하자. 내가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서울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길을 찾아서 부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다. 나 스스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없는 법이다.
살아가다 보면 자기 객관화가 안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본다.
자신의 생각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사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다름과 틀림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쉽게 한계에 봉착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며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 반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이러한 것들이 최소화된다. 이들은 모든 것에서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하며, 겸손함을 갖는다. 정답이 아닌 최선만이 있다고 생각하며 늘 자신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점검한다. 그렇게 좀 더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생각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서
보통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은 어떠한 장단점을 가지고
이것은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가?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왔는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어떻게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무엇이 올바른지 끊임없이 생각해 보는 것. 칼 세이건이 말하는 과학의 정신처럼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해 보면서 정답을 찾아가는 것.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사로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무엇이 올바른지 이성으로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렇게 자기 객관화를 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내며 원하는 결과에 좀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