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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여름 Aug 15. 2024

여름 한가운데 대만의 중심, 타이베이에 왔다고(2)

매일 비 온 뒤 맑음 뒤 비 오는 날이 이어지고 있어서

놀러 가서 비가 오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보낸 적이 있으신가요? 대만은 1년 중 절반은 비가 오는 게 당연하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늦게 아침 식사를 먹으러 가는 정오길 위에 쏟아지던 비가 무엇보다 시원하고 반가웠습니다.


투어를 시작하자 비 온 뒤 맑음을 선보이는 오후 날씨는 28도에서 30도를 오가면서 한국보다 돌아다니기 쉬웠습니다. 하루 버스투어 가이드(Bob)와 함께 바람과 파도가 오가면서 빚어진 바위 가득한 지질공원(예류)부터 홍등이 길을 안내하고 먹거리를 손에 꼭 쥐게 하는 아홉 집 산골마을(지우펀)까지 오갔답니다.


파랑에 흰색 한 방울 섞인 하늘에 뜬 쨍한 태양 아래 암석에 둘러싸인 사람들 사이에서 짠 바닷바람 냄새를 실컷 맡고 해식 동굴의 파도에 깎인 결을 눈에 한가득 담아왔습니다. 그늘 한점 없는 산책로에서 이곳에 겹겹이 쌓인 시간에 비하면 우리가 살아갈 날은 짧디 짧으니 저 시간을 잘 대해줘야겠다는 결심이 들어섭니다.

해양지질공원의 별미는 단연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습니다. 산미 없이 고소하면서 연하게 목마름을 뚫는 시원한 커피 한잔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듯합니다. (@Yay! Cafe)


유흥이나 술을 권하지 않는 나라여서 차나 밀크티를 들고 소소한 행복 포인트를 모으러 다니기 좋았습니다. 여행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겪어온 경험은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지나간 삶 자체가 여행과 같이 시트콤 에피소드로 넘쳐서 이따금 특별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일상 속 공간에서 떨어져 있다 보면 돌아갈 자리와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석탄을 나르기 위해 지어졌던 핑시선 기찻길 철로에서 4색 천등에 하늘로 보내고 싶은 소원을 담으면서 지금 삶에서 지켜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닿을 말을 고심해서 적어 보냈습니다.


공직에 있는 H(노랑: 재산)와 N(분홍: 사랑)의 소원 속 자유가 시선을 끌고, 독립한 M(빨강: 건강)의 첫 번째 염원이 가족인 걸 보면서 인생에 전체 선택과 완벽은 없다는 걸 배웁니다.




어떤 것 하나 당연한 게 없어서 매일을 감사하며 살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문득 여행객의 시간을 귀하여기는 10년차 직장인 가이드 Bob의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 울림이 느껴져 하늘색(일) 면에 일복을 써내려 갔습니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어디로 구경 가봤는지 무엇을 구입했는지 물어보는 관심 속에서, 이미 모 관광지를 가봤으면 가야 되는 곳이라는 답을 내리면 된다는 언급이 귀에 걸려왔습니다. 처음 본 이의 기억과 기록을 존중하는 화법을 저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꼭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쓰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종이 한 장이 여러분 앞에 주어진다면 쓰고 싶은 단 한 마디는 무엇인가요? 정답은 없으니 마음껏 떠올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구름 너머 하늘 높이 띄운 천등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다가 스펀 마을 아랫집 지붕이나 전선에 걸려 다음날 회수되어 꿈 종이를 보내주고 재활용한다고 합니다.(for 호기심 천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비공식) 배경지라는 옛 탄광촌 지우펀 마을, 그 먼 곳까지 가서 일리 카페를 가냐고 물으신다면 저 카페는 밀크티와 우육면도 팔고 있는 곳이라는 답변을 드립니다. 물론 아메리카노와 레몬블랙티를 마셨지만 소규모 인파 속 잘 쉬어갔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도심 야경을 보면서, 평소 퇴근 뒤 개인 일정이 끝난 후 귀가하는 버스에서 물끄러미 멍하게 바라보던 불빛이 떠올랐습니다. 밤 10시 반에 잠에 빠져 12시가 되어서 처음 와본 정류장에서 내려 당황했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놀란 마음을 미루고 택시를 잡아 집 근처에서 내려서 울컥 쏟아지던 눈물이 이제는 말랐습니다. 흐린 날도 있는 게 사는 거라서 비가 개고 찾아올 날씨가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마냥 폭염이나 장마가 밉기만 하지 않은 이유는 한여름 하늘이 파랗고 노을이 붉게 진다는 점도 들 수 있겠습니다.

골목과 야시장과 사람구경하기 좋은 공간입니다. 특히 물건을 판매하는 소상공인 분들의 시간이 깊이 담겨있습니다.


무더위에 갇힌 사우나와 같은 열기와 습도에서도 일상을 보내는 여러분이 늘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덕분에 문만 열려도 냉기가 옮겨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도 생기곤 합니다. (동시에 늘어가는 전력 사용량이 걱정이긴 하지만요.) 다음 편에서는 투어가 끝난 후 자유여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새로 알게 된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 사람을 나무 삼아 한 계절을 난다.
매일 기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한다.

음식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잘되게 되어 있다. 눈빛은 그 사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설명서이자 안내서 같다. 좋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집중한다. 그런 사람이 내주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채워준다.

- 이병률 작가님, 내 옆에 있는 사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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