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생각은
삶을 끝내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더는 그렇게 살아내고 싶지 않다는 절규다.
어떤 방식으로도 버티기 힘든 생의 무게가 아니라,
그 무게를 버티려 애쓰는 ‘나 자신’이,
더는 감당할 수 없어진 순간에 떠오르는 내면의 신호다.
그 마음은 삶에 지친 것이 아니라,
통제하려는 나의 힘에 지쳐 있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은 것은 인생이 아니라
그 인생을 끌고 가야만 한다고 믿어온 고된 방식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무너질까 봐, 붙잡지 않으면 사라질까 봐,
애써 쥐고 있던 수많은 감정과 관계와 책임들.
사실은 그것들이 나를 지치게 만든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놓지 못한 내 손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멈추고 싶었던 것이다.
단지 잠시 쉬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걸 놓고, 고요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평화를 원했던 것이다.
그 상태가 본래 나의 근원적 모습이기에.
그런 나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 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말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다르게, 다시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더는 견디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더는 나를 해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통제를 내려놓고, 책임을 내려놓고, 사랑받기 위한 애씀을 내려놓고,
흐름에 나를 맡기고 온전한 나의 모습 그대로,
나의 근원적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죽음은 탈출이 아니라 방향 전환의 충동이다.
이전의 ‘방식’에서, 새로운 ‘존재 상태’로 옮겨가려는 변화의 신호다. 그리고 그것은 생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의 깊이로 들어가는 초대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나는 이제 흐르고 싶다고. 그러니 이 고백을 감춰선 안 된다.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안에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고, 그 끝엔 새로운 나로의 귀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흐르기로 했다. 통제를 놓기로 했다.
그러자 삶은 아무 일도 아닌 듯, 나를 다시 살게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삶을 끝내기 위한 문이 아니라,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깊은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