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한다’는 말은 언뜻 보면 아주 단순하다. 어떤 것을 내 것이라 부르고, 그것을 쥐고 있고, 다른 이와 구별 지으며 안도감을 얻는 행위.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소유란 결국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과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는 감정의 구조물이다.
소유는 늘 불안과 함께 온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질까 봐, 누군가 뺏어갈까 봐, 혹은 내가 그 자격을 잃을까 봐.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렇게 소유를 원할까? 왜 끝없이 가지려 하고, 움켜쥐려 하고, 내 것이라는 표식을 남기려 할까?
그건 ‘내가 없다’는 공허에서 출발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갖고자 할 때, 사실은 그것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랑을 소유하려는 건, 사랑받는 나가 진짜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돈을 소유하려는 건, 가치 있는 나가 이 세계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얻고 싶어서.
사람을, 집을, 이름을, 성취를 소유하려는 건, 나라는 존재가 이 허공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착각을 잠시라도 품고 싶어서다.
하지만 묻자.
정말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랑도, 몸도, 감정도, 관계도, 이 시간도,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하고, 스쳐가고, 지나간다.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저 경험할 뿐이다. 잠시 맡겨진 것처럼, 우리를 지나가는 그 감정들, 그 사람들, 그 순간들을 겪고, 그 안에서 배우고, 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는 환상이지만, 그 환상을 통해 배우는 진실은 너무나 깊다. 우리는 소유라는 착각을 통해 '진정한 나'는 그것들 너머에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사라졌을 때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나.
그것이 진짜 존재.
그러니 소유에 목을 매던 마음이 있다면, 그 안을 들여다보자. 거기에는 상처 입은 자아가 ‘나는 살아 있는가? 나는 괜찮은가?’를 묻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에는, 소유를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모든 것이 더 깊게 나의 일부가 되는 역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진짜로 무엇을 갖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스쳐가는 이 모든 것을 얼마나 깊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이 어쩌면, 우주가 우리에게 소유를 통해 알려주려 한 진짜 수업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