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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나는 자란다.

멈춰 있어도 괜찮아,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태연

나는 매일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이루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으면, 해내지 않으면 헛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란 걸 지금은 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드라마만 보고 나면 마음 한쪽에서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들은 내게 이야기를 건넸고, 나는 그 틈에서 영감을 찾아 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흥미에 이끌려 몰입하는 순간들, 남들이 보기에 쓸모없어 보일 법한 시간들 앞에서 어느새 죄책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날이면, 그 시간을 허비했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내 안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성과 없는 시간은 쓸모없어,” “멈추면 무너져,” “이루지 못하면 넌 실패야.” 그 목소리는 마치 속살을 할퀴는 바람 같았고, 숨통을 조이며 마음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알게 되었다. 달리는 동안 도착지는 점점 멀어지고, 나는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맨다는 것을.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그 끝은 결코 다다르지 않았다. 결국 달림 속에서 잃어버린 건 내 안의 조용한 목소리였고, 멈추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나를 진짜로 숨 쉬게 하는지를.


처음부터 나는 순수했다. 태어날 때 나는 빛이었다. 그저 온전히 이 세계에 흘러들어와 존재했다. 경계 없는 순수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나는 배웠다. 아니 세뇌되었다. “이건 네 거야, 저건 내 거야”, “이건 하면 안 돼.”, “넌 이런 애야." 수많은 말, 규칙, 피부에 스며든 상처, 칭찬이 쌓이면서 내 안엔 세상이 만든 가짜 나가 형성되었다. 점점 진짜 본질의 ‘나’라는 감각은 좁아지고, 깊은 의식, 영혼은 뒷자리로 물러났다. 나는 비교했고, 불안했고, 성과에 중독됐었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은 불완전했다. 더 나은 나, 더 완벽한 나, 더 강한 나만을 원했다. 그래서 놀이 같은 시간, 적요의 시간, 무위(無爲)의 시간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위는 빈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멈춘 것도 아니었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멈춰 섰을 때, 내 영혼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모래밭에 앉아 무심히 별을 줍고 있었던 것이다. 별 조각들은 하나의 별자리가 되어 언젠가 내 글 속에서 반짝였다. 멈춤은 허비가 아니라 축복이었고, 쉼은 죄가 아니라 회복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다그친다. 빠르게 성공하라고, 앞서가라고, 이루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편에 있었다. 무위의 시간 속에서, 고요한 숨결 속에서, 영혼은 더 깊이 자라고 있었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 존재자체의 기쁨 속에서.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오면,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오늘, 나는 영혼의 방에서 쉰다.”


내 영혼은 긴 여행 중에 이 땅을 지나며 빛을 비추는 육신을 입고 이 삶을 탐험하고 있다. 그러니 성취가 없어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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