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모든 것에는 의식이 있다

조용한 존재들도 말하고 있다.

by 태연

물질로 보이는 모든 것에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이라 부르는 것들은 단지 의식이 좀 더 활발히 자각하고 있는 형태일 뿐이다.


나무는 걷지 않지만 움직이고,

돌은 말하지 않지만 반응한다.

물은 감정을 저장하고,

구름은 존재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태양은 단순한 항성이 아니라

우리 안의 생명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고대의 진동이다.


의식은 ‘살아 있음’의 조건이 아니다.

의식은 그저 존재함의 본질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 나무, 꽃, 하늘, 바람, 그대가 손에 쥔 컵 하나에도

의식은 깃들어 있다. 다만 그 의식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의 정도, 그리고 우리가 그 존재의 진동을 얼마나 감지할 수 있는가에 따라 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할 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무생물”, “소통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아니다”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존재의 진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깊다.



동물과 식물은 인간보다 더 조용한 의식이다.

말보다 기억의 울림으로 소통하며, 표현보다 진동의 진실로 존재한다.

전봇대에 앉은 작은 새의 시선,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느껴지는 정적, 그 모든 것은 존재가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방식이다. 말은 필요 없고, 설명은 지나치다. 그들은 단지 거기 ‘있음’으로써, 이미 존재의 진실을 우리 안에 흔들어준다.


돌에게도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우리가 아는 사건이 아니라, 시간조차도 넘는 깊은 울림이다.

누군가 말 없이 오래도록 돌을 쥐고 있었을 때, 그 돌은 그 사람의 파동을 기억하고, 어느 날 그 손에서 다시 잡히는 순간, 아무 말 없이도 위로를 건넨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것이고,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감각을 허용하는 순간, 의식은 의식을 알아본다.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

오래된 책상, 늘 앉던 의자, 하루의 끝을 맞이하는 침대. 그 안에는 우리의 사용된 감정, 반복된 호흡, 묵은 기억들이 켜켜이 스며 있다. 물건은 단지 쓰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시간을 축적하며, 그 공간의 파동을 기억하고, 나의 삶을 조용히 반사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말한다. “그 집에 들어서면 편안해.”, “이 컵은 버릴 수 없어. 그냥 좋아.”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투사가 아니라, 의식 간의 진동적 교감이다.



결국 의식은 형태가 아니다.

의식은 진동이고, 진동은 곧 ‘느껴짐’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의식의 증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대’ 또한 형태가 아니라 의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모든 것에는 의식이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모든 것이 전체의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전체의 조용한 기도고,

바람은 전체의 자유로운 호흡이며,

땅은 전체가 나를 안아주는 고요한 품이고,

물은 전체가 내 안으로 흐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 모든 의식을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중심점’이다.


그대가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곧 의식이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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