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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명상을 한다.

by 라피

이른 아침 아기가 울며 일어났다. 잠결에 손으로 더듬어 쪽쪽이를 물리고 몇 번을 토닥이자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다 깜빡 잠들었다 눈을 뜨니, 아기침대를 붙잡고 서서 장난기 가득하게 웃고 있었다. 잠결에 봐도 사랑스럽다. "잘 잤어?" 아기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시계를 봤다. 새벽 6시 반.


한 시간 남짓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다, 지겨워 칭얼거리는 아기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분유를 타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어제 다 치우지 못한 설거지거리를 정리하고 보니, 나름 푹 잤고 배부르게 잘 먹었는지, 혼자서 잘 노는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선물 받은 투뿔 한우를 꺼내 아기의 아침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한 투뿔 한우 안심, 생협에서 주문한 신선한 유기농 채소들로 정성 들여 토마토수프를 끓였다. 마지막으로 오트밀을 넣어 조금 더 끓이면 완성. 사이사이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장난감을 쥐어주고, 주방까지 기어 오면 다시 거실로 데려다 두기를 반복하는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냉동 이유식이 아닌, 갓 만든 이유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는데... 보글보글 끓는 이유식 냄비에서 습기제거제가 떠올랐다. 이런, 얼마 남지 않은 오트밀을 털어 넣다 습기제거제까지 넣어 버렸나 보다.


순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시간은 이미 9시 반이 다 되었고, 아기는 배가 고픈지 자꾸 다리에 매달렸다. 급히 사두었던 시판 이유식을 데워 먹였다. 냄비에 그대로 남은 토마토수프가 너무 아까웠다. 한우가 아깝고, 야채가 아깝고,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깝고...


보다 못한 남편이 챗GPT에게 물었다. "먹지 말고 버리래. 어른도 먹지 말래." 눈물을 머금고 버렸다. 오늘도 발생해 버린 나의 부주의 비용. 마음이 쓰라렸다.










겨우 아침 이유식을 먹이고, 간단히 엄마아빠 아침도 챙겨 먹고, 이미 28도에 다다른 날씨에 아기를 유아차에 태워 산책을 시작했다. 우연히 동네 또래 아기엄마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하다 돌아왔는데, 괜히 말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공통점이라고는 한 동네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밖에 없는, 그렇지만 서로 외롭고 힘든 육아에 만나면 반갑지만 어색한,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를 관계. 이제는 익숙하고 오랜 친구보다 더 자주, 오래 만나게 될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별 말 아니었다고, 괜찮다고 다독여 보지만 자꾸 마음에 내가 했던 말 한마디가 걸렸다.









땀범벅이 되어 산책에서 돌아와 아기를 씻기고, 간단하고도 빠르게 물만 뒤집어쓰고 아기 낮잠을 재웠다. 졸려서 눈을 비비고, 귀를 잡아 뜯고, 머리를 긁으면서도 자꾸 침대에서 일어나 장난을 쳤다. 그러다 혼자 넘어져 침대 기둥에 머리를 쿵- 하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를 안아 달래고, 눕혀서 토닥토닥, 잠재우기 기술들을 시전 했다. 이마 쓸어내리기, 눈썹 쓰다듬기, 눈 가리기, 손 잡아주기... 뭘 해도 자꾸 손을 쳐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라 좀.







아기를 재우다 함께 잠들었나 보다. 울음소리에 다시 일어나니 오후 2시,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에게 이런저런 장난감을 쥐어준 후 냉동 큐브를 꺼내 이유식을 만들었다. 오전에 버린 투뿔 한우 토마토수프가 자꾸 아른거렸다. 실수만 안 했어도, 점심까지 해결됐을 텐데.


이유식을 몇 번 받아먹다, 자꾸 숟가락이며 그릇을 달라고 보챘다. 그러다 성질을 내며 입안에 물고 있던 이유식을 뱉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순간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이제 곧 10개월, 자기주도 이유식을 슬슬 시작하긴 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걸 주면 또 아기의자를 전체 분해해 세척을 해야 할 텐데, 자기주도 가운이라던가 캐처 같은 걸 또 사야 하나??


계속되는 아기의 강성 울음과 요청으로 목 끝까지 말이 차올랐다. '제대로 먹지도 못할 거면서, 먹기 싫으면 그만 먹어!!'


잠시 식탁 위의 한 점을 응시하며 몇 호흡 가다듬었다. 그래, 아직 10개월도 안 살았지. 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랬지...


결국 아기 손에 숟가락과 그릇을 쥐어 줬다. 언제 울었냐는 듯 세상 다 얻은 표정으로 웃으며 신나게 난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숟가락은 이유식을 발사하는 대포였고 그릇은 어디로든 던질 수 있는 볼링공이었다.




아...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됐다. 이러면서 배우는 거겠지...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아기와,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 가는 식탁과 바닥을 보며... 웃음과 울음이 함께 났다. 천천히 놀아라. 엄마는 좀 쉴게. 그래야 너도 씻기고 여기도 치우고... 그러겠지.









아기가 태어난 지 290일, 그날부터 시작된 평범한 하루들의 순간들. 오래 기다려 얻은 귀한 아기인데,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애지중지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매일이 시련이고 선물이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충만한 기쁨과 사랑, 그리고 피로와 혼란을 함께 겪고 있다.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새롭게 깨달은 나의 부족함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것 같을 때마다, 잠든 아기의 모습을 보며 오늘 해주지 못한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안타까울 때마다....



그래서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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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