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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변화

아빠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맞은편자리에 아저씨 둘이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그 둘이 싸우는 거다. 이유는 아주 소박했다. 


왜 그렇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냐고. 왜 내 다리 치냐고.

내가 언제 당신을 쳤냐고. 설령 부딪혔다 해도 뭔 말투가 이렇냐고.


작게 시작한 싸움은 그들을 일으켰다. 점점 소리가 커졌으며 곧이어 한 아저씨가 다른 아저씨의 멱살을 잡았다. 나이 지긋한, 멀쩡한 남자들의 싸움은 처음 봤던지라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길이 향했다. 몸싸움으로 까지 이어지자 주변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너! 내려!" 소리와 함께 그들은 스크린도어 밖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걱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우리 아빠한테 누가 저렇게 뭐라 하면 어떡하지? 아빠는 이제 싸우지도 못할 텐데, 괜히 이상한 사람이 표적으로 삼고 건드리면 어쩌지.. 


"아빠, 아빠한테 누가 저렇게 시비 걸면 어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아파서요.라고 해야지."

아빠는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빠의 대답에 마음이 울컥했다. 한 성격 하던 우리 아빠 어쩌다 이렇게 됐나. 




뇌출혈 이후 아빠의 걸음걸이는 뒤뚱뒤뚱거렸고, 왼팔은 일정높이 이상 들지 못했으며, 얼굴의 근육 또한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밥을 먹으면 한쪽으로밖에 씹히질 않으니, 온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가득했다. 바깥에서 화장실이라도 한번 가면, 왼쪽바지춤은 축 내려와있었다. 항상 바지 올리는 것을 챙겨야했고, 몸을 잘 쓰지 못했기에 누구보다 더 청결에 신경써야했다. 모든 행동에 있어서 과거보다 2-3배의 시간이 더 들었고, 낮아진 인지는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 십상이었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은 그런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보는데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당연히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건데. 왜 이걸 저렇게 저걸 이렇게 하는지. 잔소리하면 스스로도 답답하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럼 또 가족들은 다 당신을 위한 건데 왜 화내냐며 자리를 떠나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러한 사건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아빠가 화를 안내더라.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잔소리에 대한 반응은 "내가 잘 안돼. 어려워."였다. 애교 섞인 표정과 함께.


아빠의 "죄송합니다. 몸이 아파서요."와  "내가 잘 안돼. 어려워."의 의미가 같게  느껴졌다. 

아, 아빠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거구나.


이미 병은 자신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그 변화를 거부하고 부정하면 과거의 자신만 찾으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우울감과 박탈감에 휩싸인다. 아빠는 그러한 부정기를 거쳐 드디어 자신의 그대로를 받아들인 듯했다. 나 못한다고, 이 정도의 요구는 나한테 어렵다고 말하는 아빠가 찡했다가, 되려 멋지게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빠를 보고 또 하나 배웠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네. 그냥 인정하면 되는 것을 괜히 뭔가 바뀔 때마다 내 마음만 아프게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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