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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단 Oct 04. 2023

옥상

환자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각기 다른 저마다의 루틴이 존재한다.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은  밥을 먹는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 뿐이다. 이를 제외한 산책하는 시간, 씻는 시간, 재활 가는 시간 등 모든 것이 다르다. 모두가 함께 있지만, 좁은 병실 속에서 모두가 다른 시간을 보낸다.


아빠와 나는 점심을 먹고 2-3시쯤이면 산책을 나갔다. 이외로 병원 안에서 산책할 수 있는 곳은 꽤나 다양하다. 복도를 걸을 수도 있고,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고, 계단을 오를 수도 있고, 주차장 근처를 크게 돌 수도 있었다. 아빠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옥상이었다. 인지가 과거만큼 회복되지 않은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과는 다른 아빠의 순수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산책하며 수다를 떠는 시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빠는 군대이야기를 자주 들려줬다. 자신의 시절에는 폭력은 일상이었다고, 선임들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며 옥상난간에 기대 엉거주춤한 몸동작으로 시뮬레이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 아빠는 밑에 사람들 안 때렸어? 나의 물음에 멋쩍은 듯 웃으며 나도 때렸어. 미안해 죽겠네. 대답했다.  

아빠는 옥상에 가면 그 '형님'이 오셔서 좋아했다. 바로 군대 형님이다. 21살 여자에 미필인 나는 정말 의아했다. 20년도 훌쩍 넘은 시절의 이야기를 추억하며 그 공통점으로 친구가 된다는 게. 그리고 남자들 다 군대 가는데 왜 그 아저씨만 좋아라 따르는지. 마주칠 때마다 아빠는 일부러 마비로 인해 잘 올라가지 않는 왼손을 올렸다. 경례해야 한다면서, 중심도 안 잡히는 다리를 딱 모으면서, 말이다.


그 아저씨는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휠체어를 타고 아내분과 함께 오셨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셨다. 아빠는 그 형님은 얼마나 힘든 군대 생활을 했겠냐며 나에게 슬프다는 듯 말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치, 그럴 시간에 우리 엄마 고생하는 거나 고마워해!' 라며 투정부렸다. 아빠의 인지가 낮아져서인지, 아니면 그 아저씨에게 군대라는 주제로 꽂힌 건지. 참 이상한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늘 아빠를 받아줬다. 아빠가 어떤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껄껄 웃으며 아내분과 웃어주었다. 아빠는 형님을 만나면 자주 군가를 불렀다. 그럴 때면 아저씨도 함께 불러줬다. 넓은 듯 좁은 옥상에서 군가를 부르는 아빠와 아저씨를 보면서 웃음이 났다. 20년도 더 된 기억 속에서 군가를 꺼내 부르는 아빠가 귀여울 따름이었다.


20대 초반 2년의 기억이 저렇게 오래간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내 나이에 군대로 끌려간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면서, 2년도 안되는 시기가 평생 가져갈 추억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궁금하기도 했다. 아빠는 아저씨와 왜 그렇게 군대이야기를 했을까?

답답한 병원 속에는 모두가 처음보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서 또다른 사회가 만들어지는데, 어느 만남이나 그렇듯 관계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통점이 필요하다. 아빠와 아저씨의 군대이야기는 그저 공감대형성을 도구로 쓰였을 수도 있다. 답답했던 병원 생활 속 옥상에서의 만남과 소소한 대화들은 마치 병원을 벗어난 것과 같은 느낌을 줬으리라. 그날 불었던 선선한 가을바람과 아빠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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