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해단 Oct 04. 2023

재활

길을 걷다 보면 깁스하듯 팔을 ㄴ 자로 들고, 한쪽다리를 끌며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그게 어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인지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거나 피해 다녔다.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우리 아빠가 되다니. 나에게는 새로운 시각이 열린 듯했다.


아빠는 수술 후 몇 주 동안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했다. 소변은 관을 통해서 소변통 안에 모였지만, 대변은 기저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철없는 딸은 아빠 대변까진 못 보겠다며 엄마를 다 시켰다.  그게 뭐라고 엄마에게 책임을 다 물게 했는지 참 못된 딸이 아닌가.


아빠가 스스로 앉을 수 있어질 때쯤, 재활이 시작됐다. 나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항상 아빠의 곁에 있었기에 재활을 같이 다녔다. 언어치료,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하루의 일정이 빼곡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병원도 수업이 참 많았다.

 

나는 보건계열의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언어치료를 전공하고 있었다. 아빠가 언어치료를 다녀오면 들고 오던 자료를 참고해서 야매 언어치료를 진행했다. '딸내미 학교 실습 도와주는 거다, 딸내미 예행연습시켜 주는 거다' 라며 아빠를 공부시켰다. 나는 그저 학부생 나부랭이 었기 때문에 치료 목표를 세우지는 못했고, 언어치료실에서 공부하고 온 것을 복습하는 수준으로 진행했다. 야매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빠는 정말 바보가 되었구나. 였다.


단순한 계산조차 힘들어했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2천 원짜리 양파와 5천 원짜리 생선을 사고 남은 돈은 얼마인가?라고 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굴도 마비가 되어 입술과 혀를 움직이는 데에도 어려워했다. 자연스럽게 말투는 어눌해졌고,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도 하나의 미션이 되었다. 

공부는 가족이 시키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따라 하지 못하는 아빠를 보고 답답해할 때마다 아빠는 애교 섞인 표정을 보였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그래! 아빠가 무슨 계산할 일이 있겠어. 요즘은 카드만 내면 다 돼!' 하며 아빠와 수다 떠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실 언어재활보다 중요한 것은 팔과 다리의 재활이었다. 작업치료와 물리치료도 복습을 해야만 했다. 왼팔로 물건 잡기, 손 오므렸다 펴기, 팔 올리기 등 아주 간단한 행동도 힘겨워했다. 정상적인 몸동작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움직임은 터득하길 모두가 바랐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지, 아빠는 힘들어하면서도 재활에 열과 성을 다했다. 쉴 수 있을 때도 걷는 연습 하자며 복도로 나갔고, 팔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는지 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팔을 올려댔다. 내가 무슨 물건을 들어야 할 상황이 오면 자신이 하겠다며 왼손으로 물건을 집으려 노력했고, 자꾸 오므려지는 손을 펴기 위해 오른손으로 왼손을 항상 만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빠의 재활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하셨다. 처음 아빠가 입원했을 때만 해도 거동이 안될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어느덧 걷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니! 얼마나 큰 성과인가. 이 모든 공은 아빠에게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아빠가 너무 고마웠다. 편하게 하던 모든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5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을 가지게 된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어떤 생각으로 재활을 계속 이어나갔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였으면 그저 침대에 누워 우울함에 잠겨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비로소  혼자 걸어 다니고, 화장실에 가고, 반찬을 꺼내먹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단순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아빠를 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와도 내가 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그저 제자리에 있을 뿐이라는 것. 내가 노력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면 못할 것은 없다는 것.





 




이전 04화 입원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