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나갈 용기
아파트 입주 6개월 전부터 남편은 들떠 있었다. 전셋집을 전전한 우리 가족에게 잘 된 일이지만 어쩐지 나는 입주 전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여보 신도시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온대 6년 후에 ㅎ"
"여보 걸어서 15분 거리에 지하철이 연결된대 7년 후에 ㅎ"
"여보 여기는 걸어서 진짜 가까운 곳인데 대형식자재마트가 들어온데 이건 3년 후야 ㅎ"
남편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나에게 이것저것 새로운 정보들을 알려주었다.
"도대체 그런 거는 어디서 아는 거야?"
"아~ 입주자 카톡이 있어. 인증받으면 여기 들어올 수 있는데 신도시가 활성화된다느니 망한다느니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좋은 정보도 있고 다 있어."
"아~ 그렇구나."
슬쩍 들여다본 남편의 카톡에는 실시간 글이 마구마구 올라오며 잠깐 보지 않아도 채팅창엔 300+가 항상 떠 있었다.
대출정보, 가전가구의 정보가 필요해질 시점. 입주민들은 본인이 알아본 정보를 세세하게 공개하였고 그 덕에 우리는 직접 가서 발품을 팔지 않아도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골라 마음에 드는 사항들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입주직후, 생전 처음 써보는 인덕션은 어떻게 쓰는지 밑에 달린 오븐형 레인지는 오븐으로 쓸 때 전자레인지 판을 떼야하는지 난방은 어떻게 잠그는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았던 나는 결국 남편을 따라 입주자 카톡방에 입성하였다.
귀찮게 아파트 관리소에 전화를 하지 않아도 질문 한 줄이면 1분 안에 해결되었다.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나요?"
"상시로 버릴 수 있습니다."
"감사해용"
그 밖에도 층간소음 이슈, 입주초기 관리소의 불친절 이슈 등 다른 입주민들의 고충사항들까지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아 저런 일도 있었구나.' 하며 흥미로운 사건을 알고 있는 내가 뿌듯했다.
나중엔 어디 유치원이 좋을지, 어느 발레학원이 좋은지 입주자 채팅방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람. 입주자 맘톡이 따로 있단다. 맘톡에도 인증을 받아 들어가 보았다.
들어가 본 맘톡도 역시나 신세계였다. 아이물품들을 나누거나 싸게 팔고, 층간소음매트 시공후기가 있고 아이학원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두 개의 입주민 단체톡이 생성되었다. 티브이를 볼 때도 일하다가 잠깐 쉴 때도 틈틈이 봐두었다. 단체톡을 보지 않는 사이 소중한 정보가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 이 흘렀다. 나는 어느 때 보다도 스마트폰을 더 쥐고 살고 있었다. 주차장이 너무 미끄럽다느니, 관리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느니... 수백 개의 많은 말에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여보..."
"왜?"
"정보 얻으려다가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까지 머릿속에 들어와... 근데 안 보면 왠지 불안하단 말이지... 난 맘톡까지 단체톡이 두 개라 더 그런가 봐."
"난 입주자 단체톡 나왔는데?"
"뭐라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냥 나와. 이제 살고 있으니 된 거 아냐?"
"그런가..."
나는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고 며칠이 더 흘렀다. 하원을 하고 놀아달라는 아이의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맘톡을 들여다보며 근처에 아이와 주말에 가볼 만한 곳을 엿보고 있었다. 뭐지이건. 지금 아이와 놀아줘도 되는데 나중에 더 재밌게 놀아주려는 욕심에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생기기 전이라 나는 오후 한 시, 두 개의 채팅창을 하나씩 들어간 후 순식간에 각각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번호를 바꿔서 튕겨나간 사람처럼 말이다. 입주하고 일 년이 지난 지금 입주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아직도 채팅이 활발하다고 했다.
'휴... 나오기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