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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Aug 20. 2024

나무를 심은 사람

아이들에게는 어떤 책일까?

어느 날 한 아이가 학교에서 하는 수업 중에 "도덕 수업이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져요."라는 말을 했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도덕 수업을 재미없고 지루한 수업이라 여기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도덕 수업 시간에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데, 옆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있고,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라고 하지만,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하나마나한 이야기만 하는 수업 같다는 말이었다.


물론 아이들의 말에 공감이 가는 바도 있다.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내가 도덕 교과서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지만 난 요즘 같은 시대에 도덕이나 윤리, 철학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거친 말을 쓰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것과 그런 행동이 나쁘다는 것 조차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전자의 경우 한 두 번 실수를 할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올바른 언행을 할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 조차를 모르면, 앞으로도 올바른 언행을 할 가능성은 없으니 말이다. 가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거친 말과 비속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대화를 하는데, 그 말이 나쁜 말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든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지는 누군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행을 하는 주인공의 성격이나 행동이 중심이 된 이야기들은 비교적 이야기 구조가 간단하고 메시지가 뚜렷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저 뻔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읽기에는 너무 감동적인 책이지만, 아이들은 읽고 나서 심드렁하거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으로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어떤 내용일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을까?

아이들과 주인공 양치기 노인이 왜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까, 양치기 노인은 행복했을까, 마을 사람들은 변할 수 있을까 등 등장인물들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단순하고 메시지가 분명한 이야기일수록 이야기 자체에 중심을 두면 더 단조롭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에 중심을 두고 그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책에 대한 몰입을 높일 수 있다. 주인공의 선함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강제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이 강제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 불필요한 조급함일 뿐이다.

양치기 노인이 오랜 시간 묵묵히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숲을 이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한 상황에 대해 그저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도 이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양치기 노인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이의 진심이라면 좋은 일이지만, 책을 대충 읽고 이렇게 독서록을 썼다면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진지한 고민을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주제를 담고 있는 책들은 대체적으로 이야기가 짧다. 글밥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쉬운 책이고 나이가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주제가 분명한 책을 뻔한 도덕 교과서로 느끼지 않고 진가를 맛보려면 소화 가능한 나이에 읽는 것이 가장 좋다.

말괄량이 삐삐나 빨간 머리 앤은 혼자서도 충분히 책 안에서 뛰어놀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읽어야 하는 것이 맞다. 삐삐와 앤 이라는 평생을 함께 할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너무 어린아이 스스로 양치기 노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버거워 보인다.

짧지만 좋은 글들이 그저 그런 책으로 아이들 옆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색이 없는 책 읽기는 글자를 읽는 것일 뿐이다. 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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