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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민호 Sep 06. 2024

레트로 감성의 그림책, 나의 사직동

그림책으로 세대 간 소통하기

그래서 그 아주머니를 통하면 뽀글이 파마도 말만 잘하면 재료값만 주고도 할 수 있었으니 우리 할머니들에겐 고마운 존재였을 거다. 그림에서도 보이지만, 예전엔 모든 할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은 않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엄마와 할머니한테는 제일 손이 안 가는 머리였을 테니 말이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응답하라 1988' 재방송 보았는데, 여전히 재미있었다. 그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영웅본색을 비디오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보았고,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나오는 장면에선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응답하라 1988이 좋았던 이유는 내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재미도 컸지만, 내 부모님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지만, 드라마 속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면 나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그림책이 있다. '나의 사직동'이다. 이 책 또한 2003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19년이 되었지만, 레트로 감성을 느끼기 그만인 책이다.

멀리 고층 빌딩 사이로 낮고 낡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비가 온 다음 날, 골목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기분 좋게 선선하다. 한때는 높고 깨끗하게 정리된 고층 빌딩 사이에 낡고 오래된 집이 있으면 지저분하고 보기 안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새것에만 익숙해 오래된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저 물 흐르듯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시간이 주는 아름다움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최애 하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 신림동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는 익숙한 장면이다. 동네마다 손재주가 뛰어난 아주머니가 한 분씩은 계셨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를 통하면 뽀글이 파마도 말만 잘하면 재료값만 주고도 할 수 있었으니 우리 할머니들에겐 고마운 존재였을 거다. 그림에서도 보이지만, 예전엔 모든 할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은 않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엄마와 할머니한테는 제일 손이 안 가는 머리였을 테니 말이다.


동네 사람들이 반장 할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동네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어른들을 따라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쫓아 온 아이의 모습까지 행복해 보인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 10 가구 사는 연립주택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유년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때이다. 집 앞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꽃밭과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 저녁이면, 아이들은 모여 공놀이를 했고, 퇴근한 아빠와 엄마들은 평상에 앉아 소주 한잔에 음식을 나누곤 했다.


학교가 끝난 후 집에 왔는데, 엄마가 집에 안 계시면 자연스럽게 옆집에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았다. 그렇게 옆집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옆집 아주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라면 하나 끓여줄까?" 하며 웃으셨다. 어딘가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 빨리빨리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오래된 것들은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았던 엄마, 아빠,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 책을 손자, 손녀와 함께 책장을 넘겨보는 건 어떨까? 세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시대이다.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어른들에게 나의 사직동이 애잔한 이유는 그저 옛 풍경을 그림책을 통해 볼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반장 할아버지, 재활용 아줌마, 뽀글뽀글 파마를 한 할머니, 계단을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아이들...... 그래서 사람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아이들 옆에도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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