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책과 나 11화

사랑 안에서

(feat.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최고수정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강제 수용소를 4곳이나 전전하면서도 살아남았다. 심지어 그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로고테라피’라는 이론을 창시하기까지 한다. 흔히 수용소를 떠올리면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그 적나라한 절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굳이 봐야 할까. 가혹한 현실을 책으로나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외치고 싶다. 독자 자신의 현재가 천국과 지옥 사이 그 어디에 있든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시를 한 편 완성하기도 했다.


이 책은 70여 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그중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라는 제목만은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숭고한 목표는 ‘사랑’이라는 것을 작가가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작가가 수용소에서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 사람의 사연이 애틋하다기보다는, 처참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을 놓지 않으려면 사랑 안에서 가능하다고 내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을 때 작가는 한밤중에 열린 축하연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어느 간부의 주관하에 열리는 파티였다. 왁자지껄함 속에서도 그는 바이올린의 흐느끼는 소리에 이입해 눈물을 머금는다. 맞은편 막사에 누워있으나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한 사람이 그리워서다. 불과 몇 백 미터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너무 멀리 있는 그녀. 특히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다나. 얼마나 비참했을까.


수감자들은 영양실조인 상태에서 강제노동까지 견뎌야 했다. 영하 16도의 강추위는 물론 발진 티푸스 같은 병마와도 싸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모습, 그중에서도 웃는 얼굴을 떠올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실제로 수감자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내내 모두가 아내 생각을 했다는 대목도 있다. 수용소에서 인간의 본질을 잊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생의 목표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훨씬 깊어진 건 확실하다.


좌절에 직면한 나약한 인간들이여, 당신을 일으켜 세울 이 한 사람 있는가. 신이 이렇게 묻는다면 나에게도 남편이 있다고 답하겠다. 나의 내적 풍요로움의 근간인 한 사람. 그가 내 생명보다도 소중하다고 느꼈던 한 순간이 있었다. 주말 부부 생활을 1년 정도 마치고, 드디어 동거를 시작할 때였다. 전업주부였던 나는 욕실 앞 바닥을 청소하다가 남편이 떨어뜨려 놓고 간 체모 하나를 보고 그만 울음이 터졌다. 그동안 350km의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는 것이 별안간 억울하고 서러웠다.


이 일화를 지인에게 했더니 내게 시를 써보라고 추천했다. 머리카락 한 올처럼 작은 것도 심금을 휘저을 수 있는 감성을 내가 가졌다는 것이다. 한동안 일상에 치여 그런 기억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는 우리 선조들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탐방에 나섰다. 그 경험 때문인지, 나라를 지키듯 목숨 바쳐 내 남편을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들었을 때 신기하게도 시가 써졌다.



나의 태극기


당신은 나의 태극기

내가 기댈 곳

내가 머무를 곳

내 터전

내 고향


당신은 나의 태극기

나를 일어서게 하는

나를 힘내게 하는

내 밥

내 에너지


당신은 나의 태극기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것

죽어서도 갖고 싶은 것

내 숨

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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