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양면의 조개껍데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나의 이상하면서도 어두운 모습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의 자신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 데서 이 노래가 탄생했을 것이다. 김초엽의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에는 이 이중 자아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 있다. 7개의 단편소설 가운데 표제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그렇다. 주인공 샐리는 일명 ‘라임’과 ‘레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SF라는 장르가 낯설고, 김초엽의 세계를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독자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
자신이 여성이라면 자신의 남성 버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는? 소설의 초반부만 하더라도 나는 ‘이중 자아’라는 개념 자체가 불투명해서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라임은 여자고 레몬은 남자였다. 사춘기 때쯤 다른 성별로 인한 갈등이 시작된 게 잘 드러나 있다. 샐리는 이중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거부해서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분리 시술을 시도한다. 시술을 담당하는 정신건강 전문의가 존재하는 것이 황당했지만, 넓은 마음으로 다음 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장이었다. 장르만 SF일 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의 존재였던 것 같다.
샐리의 직업은 잠수부다. 보통 낮에는 라임이 몸을 지배하고 레몬은 무의식으로 자리를 옮긴다. 밤에는 그 반대다. 이렇게 의식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설정이 점점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심해까지 잠수할 수 있는 탁월한 레몬의 능력 때문에 샐리는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연인이 된다. 여기서부터 갑자기 로맨스 소설이 됐다. 샐리가 분리 수술을 받지 않았는데도 연인은 기가 막히게 라임과 레몬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이름도 그가 붙여준 것이다. 샐리가 여자여도 사랑했고 남자여도 사랑했다. 샐리의 연인은 ‘지금 누구야’라는 질문 없이 한결같이 어쩌면 동등하게 라임과 레몬을 각각 사랑했다. 촉촉한 감정들에 흠뻑 빠지다 보니 세상에 이런 로맨스가 또 있을까 싶었다.
특히 레몬이라는 캐릭터가 가져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다소 음침한 분위기의 이 인물은 좋게 말해 신중한 타입이었다. 라임이 의식 분리를 하려고 할 때 반대한 것만 봐도 그렇다. 외로우면서도 우울한 어쩌면 괴팍하기도 한 그의 성격이 연인에게 보호본능을 일으켰을지 모른다. 읽는 사람도 뭔가 짠하면서 그의 찌질한(?) 면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아마 내 속에도 그런 고요하고 외로운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하여튼 소설은 후반부에 큰 사건도 있고 이별도 있고 반전도 있고 짧은 흐름에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조물조물 움직였다.
‘가시나무’라는 노래와 달리, 자신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연인의 쉴 곳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주인공은 깨닫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 눈이 되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자기 모습까지 이어가 보는 것 또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옆에 나를 믿고 의지해 주는 연인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트랜스 젠더의 삶과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자라는 의식을 가진 레몬이 여자의 신체를 가진 채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암담했을지 슬퍼졌다. 독자가 이런 고민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면 나에겐 완벽히 통했다. 그게 아니라도 한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작가는 여러 의미에서 분석을 많이 한 것 같다. 괜히 김초엽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