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현생 사이에서 후회
왜 안 좋은 일은 항상 같이 일어나는 가? 이상하게도 나쁜 일이 생길 땐 꼭 뒤따르는 것처럼 연이어 사건이 터지곤 한다. 어째 불안 불안하다 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퇴사를 말하러 가는 나의 모습. 그 말을 듣는 팀장의 표정. 그 순간 그분의 대답. 이 모든 것이 잠자기 전 마치 파노라마처럼 촤르르륵 머릿속에서 위잉 위잉. 그러다 보면 밤새기 일쑤. 이것은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방인가. 아님 다시 몇 달 전처럼 백수로 제발 누군가 나한테 일자리를 줄 수 있었으면 했던 그때가 떠오르며 차마 돌아가고 싶지 않은 불안감인가. 이 회사를 나가면 또 앞에 펼쳐지는 낯선 나의 세계에 대한 무한한 걱정. 그러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끝나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면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그 한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뒤엉키고 결국 그 상념들이 일의 결과물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불과 작년. 나의 퇴사는 상대적으로 깔끔했다. 공무원이었던 나는 몇 가지 매뉴얼을 인터넷에서 서치 한 후 그래도 남아있는 적당한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좋게 퇴사했다. 원래 헤어짐에는 좋은 결말은 없는 편이라고 주변 친구들의 퇴사 사례들을 종종 들어서 걱정이 앞섰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예정 퇴사일에 맞춰 퇴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은 나를 붙잡았는데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집에 와서 곰곰이 돌아보니 본인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봐.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어. 시간을 줄 테니 천천히 다시 생각해 봐. 나의 성급한 판단을 타일렀던 그는 단순히 본인의 고과를 먼저 생각하고 권유했던 것을 그때는 순진해서 몰랐었다.
그리고 그 대망의 퇴사 발표 전 전날. 말하자면 이틀 전 나는 기한 내 결재를 올려야 하는 중요한 업무를 송두리째 까먹었고 이것은 그의 발언에 영향을 미쳤다. 퇴사? 어저께 실수 때문에 그래?
실수의 반복은 인간의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 이는 놀랍게도 동생의 그날에 오마주처럼 반복되었다. 동생은 퇴사를 말하기 전날 비슥하게 대형 사고를 쳤다고 했다. 역시 타임리밋이 있는 업무를 아예 잊어버렸고 이를 깨달은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팀원들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모여들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일은 빨리 처리했지만 상사의 한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반복된 실수로 작아진 동생의 마음은 아주 작아진 자신감과 함께 수그러드렀다.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봐 만을 반복하던 동생은 어느덧 자책과 자기 비하를 멈출 수 없었다. 이제 잘하던 일이었던 것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본인에 대한 혐오. 이는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안 하던 실수로 인하여 더욱 모진 폭언이 이어졌다.
폭언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너는 하는 것이 무어냐?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냐부터 벌써부터 빠져서 그런다느니 정신 차리라는 말들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다.
이는 이 서사의 시작일 뿐이고 퇴사 직전까지도 동생은 그 감정들을 곱씹었다. 강도 높은 업무시간과 양, 상사들의 질책, 부족한 수면 시간 이 모든 것을 들은 나는 동생의 물음에 긍정을 표했다. 언니, 나 퇴사할까? 그래, 네가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렇다고 해도 퇴사가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 쉬워 맨날 가슴속에 사표서를 품고 다닌다느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용기 있게 저 퇴사하겠습니다 하고 탁상에 탁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말이다. 그렇다. 모두가 알고 있게도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은 대국민 실업 시대에 좋은 일자리라는 것은 너무 희귀하고 가치가 있다. 설사 좋은 일자리까지 아니어도 내 한 몸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거리가 소중하다. 더군다나 요즘은 일 자리 한 개를 노릴 때 필요한 자격들이 너무 많아 그것을 채우고 간신히 입사한 후 그만둔다는 것은 내 시간과 노력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 더 큰 상실을 앞둔다.
그래도 이렇게 불가피하게 퇴사를 결정했다.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의 마음이 병들어가면서, 나의 몸이 부서져가면서까지 일을 위해 나를 놓는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생의 퇴사는 이렇게 정당했다.
저는 요즈음 너무 몸이 힘들고.. 또 일도 잘 못하게 되는 것 같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 전 나와 동생은 긴 대화를 나눴다. 내 손을 꼭 쥐인 동생은 비록 모의 연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젖었다. 계속 말 더듬지 말고 너의 의견을 드러내야 한다고 내가 격려했지만 딱 대학교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의 나이인 동생은 계속해서 긴장을 풀지 못했다. 입사도 힘들었지만 퇴사도 만만치 않았다.
동생의 소식만을 기다리던 나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동생에게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모의 연습에서와는 전혀 다른 답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