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가 당신을 화나게 했다니

퇴사조차도 나의 결정이 될 수 없는 시대

by 덩실


너 지금 바쁜 시기인데 꼭 그런 말을 해야 해?


안 봐도 동생이 오들오들 떨며 말했을 것이 눈에 보였다. 돌아온 대답은 매서웠다. 네가 퇴사하면 너 일은 어떻게 하라고?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눈앞이 흐려지고 공황에 올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이곳을 나가고 싶다고 한 건데. 거창한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닌데. 왜 나는 이 순간 역적이 돼야 하는 거지.




우리는 떠넘기기를 좋아한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본인이 눈치를 보며 정해진 량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양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끊임없이 흘긋 댄다. 상사한테 더 관심을 받고 싶어서 본인이 저 처한 거지만 또 내심 평등성은 따져서 동료가 그 정도 하지 못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리고 어느새 산더미처럼 불어난 본인의 책임감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처음 그만큼 받은 것은 본인이었다는 것을.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편한 일이다. 상사의 질책에서 나를 쏙 뺄 수 있으니 말이다. 너 그 일 어떻게 처리한 거야 라며 다그칠 때 꼬리 자르면 된다. 제가 한 게 아니라 얘가 그랬어요. 이러면 참 편하다. 여기서 얘는 대개 자신보다 어린, 또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이 된다. 조직 사회에서 계속 그렇게 책임을 회피한다고 가정해 보자. 결국 먹이사슬의 맨 끝, 책임의 정착지는 다름 아닌 막내 신규가 될 것이다.


상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부하 직원이 진 실수를 책임지는 건 또 상사 이기 때문에 상사도 막중한 책임감을 진다며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는 모든 사례에 적용할 수 없지만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편리한 방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교적 경력도 적고 인건비도 가장 싼 신입을 잘라내는 것이 회사 측에서도 편리한 가성비 좋은 문책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시스템에서 신규는 무슨 기분이겠는가?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사무실 내 공기를 읽는다. 오늘 윗사람의 기분은 어떤지 그게 어떤 업무 보다고 중요하게 된다.




퇴사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퇴사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마음처럼 퇴사를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떻게 좋게 헤어질 수 있겠니. 사실 이별을 할 때조차도 물론 좋은 이별도 있겠지만 깨끗하고 칼 같은 헤어짐? 흔하지 않다. 퇴사도 이별 중 하나였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라는 상사의 말과 함께 동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희망퇴직날짜를 밝혔으나 그들은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인수인계까지 마치고 가려면 한 달을 더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사직서 쓰고 잠수 타는 사람들 마음도 좀 알 것 같았다.


나는 정확히 삼주 전쯤 고지를 해서 희망날짜에 정확히 퇴직을 했었다. 인수인계 날도 그 기간 안에 포함해 있었다. 나도 몇 번이고 사무장이 붙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건 날 위해서 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너 때문에 위에서 알면 얼마나 곤란해지겠니?


놀랍게도 같은 대사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들었다. 나의 퇴직이 당신을 화나게 했다니. 동생도 그 순간 잘 못한 것도 하나 없지만 정말 죄송해졌다. 그 말이 마치 자신의 퇴직 때문에 상사가 혼이 날 것 같은 죄책감과 압박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들은 자신의 말을 다시 포장하여 다시 내놓는다. 마치 본인들이 나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위장하여서. 나는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너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앞으로 어떤 기회가 있을 줄 알고. 그들의 표정 또한 절박해 보인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세상엔 솔직한 사람들이 많더라. 너 솔직히 퇴사하는 이유가 뭐냐며 묻던 팀장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 하지 않았다. 동생도 그랬다고 했다.


너 혹시 뭐 뭐 때문에 그래? 뭐 때문에 그래?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찍어 묻는 팀장에 여전히 나는 묵묵부답이었다. 문득 그도 이것저것들이 문제요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그렇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면 더 야속하다. 그러나 입 밖으로 한 마디도 쏟아지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 퇴사 후기를 보니 생각보다 이런 우리처럼 답답한 모습대신 솔직하게 어떤 사람을 저격하고 나갔다는 후기들을 종종 보았다. 나가고 보니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떠난 그 사람대신 들어간 것은 나였고 여전히 그 조직에는 그 저격당했던 악인은 존재하고 하나도 바뀌지 않았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대답의 필요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동생의 퇴사는 그 흔하다는 회사 사정으로 미루어진다. 기약 없이.

그 선배는 그리고 자꾸만 동생의 퇴사 소식을 더 윗사람에게 결재 올리는 것을 미룬다.

또다시 한 가지 물음이 머리를 채운다.

왜 나의 퇴사인데 나의 결정조차도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지.


keyword
이전 02화하필, 퇴사 직전의 대형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