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모든 집단에 들아가면 신입의 절차가 존재한다. 거기다가 집단에서 제일 어린 막내로 들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병아리, 신입생 새파릇파릇한 단어가 사회라는 정글 속으로 들어가면 의미가 달라진다. 사회에서 기대하는 신입의 의미, 분명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을 거다.
하다못해 요즘 이런 밈이 유행하지 않는가. 경력직 신입. 언제부턴가 (불행하게도 내가 입사했던 20년도쯤에도 이런 인식이 공공연하게 있었다) 이런 알잘딱깔센 신규를 원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신입이 이상해 보일 정도.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높은 허들이 요즈음의 막내에게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대략 5년 전 나의 신규 때를 떠올려보자. 첫 직장이 공무원이었던 나는 알바 경험의 전무로 처음 들어가는 첫 직장이 얼마나 떨렸는지. 면접을 보러 가기 전에 길었던 면접자의 줄,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어색함, 마냥 희망을 가지고 웃고만 나온 그때 그 분위기.
시간이 벌써 흘러 내 동생도 취업을 했고, 알바도 일 년이상 열심히 하고 자격증도 여느 대학생과 같이 딴 내 동생. 난 첫 직장에 들어간 동생이 자랑스러웠고 멀리 서지만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다시 신규의 자세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나의 첫 직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같은 직종의 공무원들. 그곳의 장. 동료들. 제일 가까운 사람은 당연히 사수. 이 사수의 중요성은 말해 못해다. 이유는 직장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수는 직렬을 변경한 경력직. 그도 이미 직장생활을 한 만큼 한 사기업이었다면 이미 대리급은 달았을 차고찬 경력자. 일을 잘한다고 소문난 청에서도 유명한 그런 사람. 마냥 사회도 모르고 사회의 환상에 젖은 나에게는 이미 일도 척척하고 빠른 시간 내에 끝내는 그가 참 멋있어 보였다. 엄마 아빠처럼 어른처럼 보이기도 했고.
요즘은 일 못하는 신입을 폐급이라고 부른다며? 그가 나를 부르는 이름은 폐급이었다. 남자 형제도 없고 인터넷도 잘하지 않는 나는 그런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사실 그 별명조차도 다른 사람을 거쳐 들은 것이었다. 신입 때는 상처받는 것조차도 일을 못하는 본인 책임이고 다 전부 내 책임으로밖에 몰라 그저 흘러가는 날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삭일뿐이었다.
내가 네 말을 믿으라고? 거짓말하지 마.
첫 번째.
신입이 되려면 이런 모욕을 버텨야 하는지. 내 존엄성과 내 권리를 놓으면서까지 아등바등 버텨야 하는지. 왜 나 때도 들었던 말을 아예 다른 곳에 간 동생도 듣고 있는지. 이쯤 되면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몇몇 문장들은 다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들어서 배우는 거 아닌가 의심이 된다.
동생이 마음의 병이 깊어질 때 즈음에는 저런 말 하나하나에도 가슴이 쿵쿵 무너져 집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
왜 그들은 신규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까?
다시 나의 이야기. 얘가 하는 얘기는 다 거짓말이에요. 산만하게 늘어놓는 내 얘기는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리는 나의 과거. 한 직장에서 꾹 버틴 아빠랑 다르게 동생을 옹호해 주는 가장 큰 이유. 내가 겪었던 상처를 지금 겪고 있는 너를 이해하니까. 사람은 원래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과 더 통하니까.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고 그걸 여론으로 만들어 다른 동료에게도 그 퍼뜨렸다. 정말 나는 거짓말쟁이 일까? 무엇을 위해서?
동생의 직장에서 사수는 네가 한 일이 무어냐고 되물었다. 사실 저런 말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의 성과를 꾸짖는 것이다. 하나 왜 저런 표현을 쓸까? 시간 내에 이 정도 일밖에 하지 못하는 것은 본인이 생각하는 성과보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더 일을 하길 바라서 그런 말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신입으로써 실수가 두려웠고 나의 실수가 민폐가 될까 봐 말을 아꼈다. 실수가 반복되자 나의 대답은 말대꾸가 되고 변명이 되고 사과를 해도 그의 화는 풀리지 않았고 주눅 든 나에게 더 타박하고 실수를 잡겠답시고 더 나를 잡고. 윗사람에게 혼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아랫사람을 깨고.
안타깝게도 반복되는 이러한 사이클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신입으로서 자신 의견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만 하는 동생을 보니 그때 나를 보는 것과 같이 동병상련이 일었다.
네가 그 시간에 이런이런 일을 했다고 자세히 써서 고해봐.
사실 나는 그런 말이 그 사수에게는 통할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 대개 이미 그 후임을 싫어하는 사수라면 틀어진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소통을 시도해 보라고 권유했으나 동생은 듣지 않았다. 다 변명같이 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동생이 퇴사를 결정한 날이 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