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에게
H에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연말을 향하고 있구나. 늘 시간은 너에게 그런 존재였지. 이걸 어떻게 견디나, 시간이 가긴 가려나 싶은 그런 시간까지도 지나고 보면 늘 한순간이었어. 그걸 한 달, 일 년, 십 년 반복하다 보니 이젠 어떤 시간도 막상 시작하면 금방 지나가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잖아.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작가가 꿈이었던 너에게, 이번 기회는 꿈과도 같았어. 하지만 책 쓰는 일을 두고서 네가 이 한 달을 견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지. 넌 이미 매우 바빴고, 현실을 살아가기보다는 견뎌내는 모습에 가까웠어. 거기에 원고를 쓰는 일까지 얹어야 한다니. 책을 만드는 건 너의 오랜 꿈이었으니 절대로 대충 할 수는 없고 말이야.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망설였지만, 살다 보니 알겠더라. 모든 기회는 네가 잡을 수 있는 ‘때’가 존재한다는 것. 미래의 너에게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 거란 장담도 할 수 없었고, 일단 저지르면 언제나 미래의 너는 오늘의 네 선택지를 따라 잘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너는 스스로를 믿고 덜컥 신청서를 작성해버렸어.
때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무대뽀 같은 마인드로 질러보는 삶도 나쁘지 않더라고. 그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한동안 눈코 뜰 새가 없긴 하지만, 이런 결정을 지나고 나면 우리가 용기라고 말하기도 하잖아. 이루고 난 뒤에 돌아보면 그 순간의 우리가 가졌던 마음이 바로 용기였던 거지.
그리고 매일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무사히 글을 써냈다. 바빴지만, 글을 쓰는 일만큼은 숨 쉬듯이 해냈지. 그렇게 너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언젠가 그런 말을 했었지. 너의 걸음걸음이 모여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꽤 멀리 나가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래, 연말즈음 되어 뒤돌아버니 한 해가 지났을 뿐인데 제법 나아간 모습이 보여. 그렇게 쌓인 시간들은 너의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거야.
널 믿었고, 앞으로의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도 나는 몇 번이고 너를 믿을 거야. 네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조금 멀어서 지칠 때도 있겠지만, 시간은 언제나 꾸준하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같은 속도로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그렇게 4년 뒤 졸업을 하고, 나의 자리를 찾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끝없이 성장할 너의 미래를 응원한다.
잘 하고 있어.
그리고,
보고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