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에게
L에게
나는 지독하게도 그네를 좋아했어.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야.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있잖아. 유치해도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되는 그런 놀이들 말야. 내게는 그네가 그랬어. 내가 좋아하는 그네는 구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야 하고, 그네줄은 쇠사슬보다는 고무로 둘러싸인 줄이어야 했지. 고무로 싼 그네줄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모래 바닥을 가진 놀이터는 이제는 흔치 않아져서 그런 곳에 위치한 그네를 보는 일은 퍽 어려운 일이었지만 말이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그런 장소가 주는 감흥 탓이었을 지도 몰라. 깜깜한 밤, 완벽하게 내가 사랑하는 조건을 가졌던 장소에서 흔들리는 그네에서 너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내 감성을 말랑하게 만들기에 더없이 좋았으니까. 가로등 불빛은 은은하게 퍼지고 특유의 밤공기 냄새가 나를 마취시키던 밤. 헤어지기 싫어 실없는 이야기로 서로를 붙들던 우리 둘의 모습은 그렇게 추억으로 남았어.
내게 겨울은 언제나 너를 떠오르게 만들어. 겨울은 너를 만난 계절인 동시에, 너를 잃은 계절이기도 해서,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에 마음도 함께 아려와. 한 사람을 다 알기 위해서는 사계절을 함께 지내보면 좋다던데, 너를 다 알기에는 짧았던 시간이었어. 그럼에도 시간과 깊어지는 마음만큼은 별개인 모양이었나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깊어지는 내 마음뿐 너에 대해서는 더 알 수가 없었지만.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어서 더 깊었는지 몰라. 그저 보통의 연애를 했다면 이토록 좋아했을까. 억지로 정리당한 마음이 반발하듯 너를 붙들어서, 나는 그만 착각을 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지. 파도치는 마음은 시간에 따라 흐릿해져야 했을 마음을 오히려 선명하게 만들었어. 그래, 너를 사랑한 그 시간은 어쩌면 그저 내 저항과 분노에서 비롯했을지도.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건, 내가 결국 너에게 전한 것은 모두 사랑이었어. 나보단 네가 먼저였고, 그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게 너를 위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너에게 먼저 이별을 고한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올곧게 너만을 향해 있었어.
언젠가 누군가 내게 사랑의 정의를 묻더라. 사랑을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하겠느냐고. 머릿속으로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스쳤으나 마음에 차지 않았어. 그 말들은 너를 향한 마음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으니까. 영원이라는 말은 죽음 앞에 무력했고, 죽음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폭력적이었어. 너라는 표현은 무책임해 보였고, 설렘이라기엔 가벼워. 행복이라기엔 내 사랑은 아팠고, 아픔이라기엔 그 속의 아리도록 다가오는 행복을 담지 못하잖아.
고민 끝에 내가 내민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였어.
그래,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했어. 또다시 겨울이 와. 끝난 듯 다시 돌아오는 너에게서 나는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