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에게
L에게
안녕 L. 아마 지금쯤 너는 대구를 향하는 기차 안에 몸을 싣고 바쁘게 이동 중이겠지. 늘 답장이 빠른 네가 답이 없는 걸 보니 피곤에 지쳐 잠든 모양이야. 이틀이었지만 고생 많았고, 덕분에 재미있었어.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작정한 건 그저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에 가까운데, 지금 곧장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으로 너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는 탓이기도 해.
부쩍 우리 자주 본다, 그렇지? 처음엔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는데, 한참 친해질 만한 시기에는 너도, 나도 바빠서 딱히 시간을 오래 보내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럼 소원해질 만도 한 사이가 뒷걸음질 치지 않고 느릿하게 가까워지는 걸 보며 지나간 우리의 시간이 생각난다. 억지로 연락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던 덕분인 동시에, 서로의 치열한 삶을 존중해준 덕분이고, 모처럼 여유가 생긴 근래, 나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고 매번 달려와 준 네 덕분이야.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데에는 참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아. 동생들이 날 붙잡고 마음을 털어놓던 이유들만 보아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는 걸 느껴. 네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기는 해. 함께 있을 때 심심할 겨를이 없고 재미가 터지는 콤비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또 다른 무언가 있을지는 모르겠어. 난 그 이유에 더해서 함께 있을 때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과 가장 나다워지는 자유로움이 좋거든.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네가 있어서 참 고마워. 마음이 고운 아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아서 네가 참 예쁘고, 알게 모르게 걱정이 묻어나는 네 말투가 좋아. 이런 말들을 대놓고 말한다면 괜한 마음이 너와 나 사이에 생겨버릴까 봐 꾹꾹 삼키고는 있지만, 어쩌면 내가 이미 시작된 내 마음을 모른 척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 아, 그렇다면 난 이미 네 앞에서 ‘척’을 하고있는 걸까?
지난번부터 네가 올 때마다 날씨가 흐리더라.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네가 떠나는 오늘은 또 함박눈이 내려. 그동안 눈 내릴 때마다 나는 일을 하고 있어서 낭만 같은 건 챙길 겨를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눈을 맞는 일도 생기는구나 생각했어. 여자친구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전부 나와 하고 있다는 네 투덜거림이 싫지 않기도 했고. 그러게, 그 마음은 사실 나도 다르지 않아. 근데 왜 눈 내릴 때마다 내 옆에 네가 있니.
반 농담처럼 ‘가지마’라며 옷자락 한 번 잡아보고, 그러곤 서로 우습다고 기차역 플랫폼에서 깔깔거리다가 시원하게 안녕을 말해. 어차피 또 얼마 안 가 우리는 보게 될 거니까. 자꾸 미래에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좋아하는 거라던데. 넌 왜 자꾸 나한테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는 걸까. 대수롭지 않은 척 ‘가자’라고 말하는 나는 왜 이렇게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가는지.
너의 ‘그럴 수 있지’라는 대답을 좋아해. 앞으로도 오래 좋아하고 싶고. 그 말을 나는 잃고 싶지 않아. 이렇게 생겨버린 내 감정도 너는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줄까. 내 감정 따위에 또 누군가를 잃고 싶진 않아. 그게 너라면 더더욱.
조심해서 가, L.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나. 너도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할 거야. 나도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