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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死)의 찬미' 좋은 영웅은 죽은 영웅뿐이다[1부]

악의 출현, 영웅의 탄생, 만들어지는 영웅

by 꿈꾸는인형 Nov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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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출현, 영웅의 탄생


범죄스릴러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범인 즉, 이 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꼽을 수 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마냥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일단 무차별적으로 썰고 보는 악인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면, 그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해서 이야기의 균형을 맞춰야 보다 몰입할 수 있다.

 

 

악을 본다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고 자극적이니까.

 

 

다양한 작품에서 악의 시작을 다루는데, 어린 시절에 여성들 특히 엄마에게서 받은 학대 등이 원인으로 종종 보인다. 첫 타인이라 할 수 있는 엄마와 제대로 애착이 이뤄지지 못한 게, 결국 추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극으로 이어지는 셈인데, 그 이어지는 일련의 문장 속에서 살짝, 그렇지만 위험한 방향으로 비틀어버리는 서술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때, 남자는 깨달아 버렸다. 사람은 호의를 표한 정도로는 진지하게 상대를 돌봐 주지 않지만, 죽을 정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면 24시간 내내 남자 생각만 해준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그토록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울기도 하고, 웃어보기도 하고, 말을 잘 들어보기도 했지만, 사실 엄마가 자신을 잘 돌아봐주길 원했다면 마유에게 한 것처럼 차라리 엄마에게 공포를 주는 방법이 더 빨랐을 거라고.
- 시가 아키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편안하고 안도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럽혀지는 듯 두려움과 나쁜 유혹만 찾아들었다. 더 이상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 엄마가 서 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엄마, 난 내가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난 그냥 엄마와 똑같아. 조금 나을 뿐이지. 더 이상 착한 척하는 데 흥미가 생기지 않아. 잡히지 않는 것에 흥미가 생길 뿐.
- 알리 랜드, '굿 미 배드 미'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토록 모진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엄마를 갈구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온기를 얻고자 그들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체득한, 자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식을 답습하게 된다. ‘굿 미 배드 미’ 표현처럼, 엄마와의 놀이방에서 배운, 승자는 단 한 명뿐인 사악한 게임으로.

 


그리고 이 사악한 게임의 대극엔 히어로, 영웅이 배정된다.

 


영화 ‘왓치맨’은 미국 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원작 그래픽노블을 영상화한 작품인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어벤저스’ 만큼이나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한다. 여기엔 ‘로어셰크’라고 이 영화의 화자이자, 하드보일드한 깡다구를 가진 영웅이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가 이 ‘로어셰크’가 영웅으로서 처음 각성하는 장면이다.

 

 

한 여아가 납치됐다. 한 가지 유감스러웠던 건 부유한 집안의 아이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 집안과 성만 같을 뿐 몸값도 지불하지 못하는 집안의 아이였다는 것. 이에 실망한 유괴범은 그 아이를 강간하고 토막내서 개 먹이로 줬고, 그 전말을 목도한 로어셰크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직감한 유괴범은 “난 정신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해! 날 체포해!”라며 되려 체포당할 권리를 주장했다.

 

 

인간은 체포한다, 개는 처치한다.
(Men get arrested, Dogs get put down.)

 

 

로어셰크가 식칼로 유괴범으로 내리찍으며 내뱉었던 이 대사는 유괴범의 비열한 주장을 한 줄로 명쾌하게 부정하면서 짧은 문장들을 세련되게 대구시켜 강렬한 임팩트를 만들어냈다. 원문이 영어이기에 ‘사람일 경우 체포하고, 개일 경우 도살한다.’, ‘사람이면 체포한다. 개면 처단한다’라고 다양하게 번역되는데, 난 해석의 정확도는 차치하고 저렇게 읽는 게 제일 멋있어 보인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정의롭고 선을 구현하는 영웅과 견주어볼 때, 로어셰크는 다소 이질적이다. 수사를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아무나 붙잡고 손가락을 꺾어버리며 심문을 하고, 또 다른 히어로 ‘코미디언’이 저지른 강간 등은 사소한 일탈이라고 평하는 등 ‘시작과 과정, 결과가 모두 정의로워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격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위 ‘반영웅’, ‘다크히어로’라고 분류되어야 하는 인물.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왓치맨’의 또 다른 히어로 ‘코미디언’, 멸망을 막기 위해 인류의 절반을 제거한다는 영화 ‘어벤저스’의 악당 ‘타노스’를 비교해 보면, 과연 영웅이 악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존재인 것인지 싶다. 요컨대, 영웅 또한 악과 마찬가지로 가변적인 존재이니, 상황에 따라 언제든 악에 물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애초에 변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본질적으론 단지 보는 각도에서 달리 보일 뿐 둘 다 똑같은 것 아닌가.

 

 

영웅에 대한 이야기이자, 영웅의 이야기는 아닌 이번 글은 에드워크 카의 영웅론 등을 시작으로, 다양한 콘텐츠에서의 영웅의 족적을 조명한다. 이어, 과도하게 팽창한 정의가 맛탱이가 가버렸을 때를 짚어주는 몇몇 대목을 살펴본 뒤, ‘좋은 영웅은 죽은 영웅뿐이다’라는 결론으로 내달릴 것이다.

 

 

 

# 영웅은 만들어졌다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서양문화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원형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히어로인 슈퍼맨과 예수를 견주어볼 때,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는 초월적인 존재’로서 여러모로 일맥상통한다는 것. 하긴 수천 년간 카톨릭이 유럽인들의 근간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면 영웅은 단순히 만화가의 개인적인 선호도만으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영웅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초월적인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일까. 왜 우리네 영웅 신화를 보면, 알고 보니 너는 왕의 DNA였다는 식으로 출생의 비밀을 운운하며 꼭 신분 업그레이드를 시키질 않는가. 애초부터 우리와는 다른 규격의 무언가가 담고 있어야만 영웅으로서 완성이 되는 것일까?

 


저명한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저작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카는 메타역사, 즉 ‘역사’ 그 자체를 학문적 탐구대상으로 삼는 역사학 관련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인물인데, 이 책에서 그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등의 여러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고전은 읽어야 하지만, 읽기 싫은 책이다’라는 말을 읽을 때마다 떠올리게 해 준, 참 더럽게 안 읽히는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꾹 읽다 보면 그 노고에 부응이라도 하듯 남다른 지적 쾌감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이고, 그것들을 엮는 인과관계와 객관성을 조명한 뒤, 궁극적으로 ‘역사란 이성의 확장에 따라 끊임없이 진보를 추구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내딛는 과정은 참 보는 이의 가슴을 약동케 한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카는 영웅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비스마르크가 18세기에 태어났다면 그는 독일을 통일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위인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혁신하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이라고 평했다.

 

 

요컨대 과거의 사실이 현재의 역사가에 의해 발굴되고 조명되는 등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거듭나는 것처럼, 하나의 빼어난 인물 또한 작금의 보이지 않는 사회분위기에 의해 영웅으로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다양한 영웅들의 현현은 다양한 영웅에 대한 갈구를 보여주는 흔적이라 할 것이다.

 

 

이 영웅상의 가변성에 대해 몇 가지 텍스트를 짚어보고 가자.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저자 조현설)’는 삼국유사의 한 사건을 소개한다. 경덕왕 재위 시절, 해가 두 개 나란히 떠올라 열흘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아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명사라는 유명한 승려가 등판하였고, 그가 도솔가를 부르자 해의 괴변은 소멸하고, 다시 나라는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저자 조현설은 이 통일신라의 ‘해 떨어뜨리기’ 설화를 명사수 예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중국의 ‘해 쏘기’ 신화의 변형이라고 해석하여, ‘활을 쏘는 영웅’에서 ‘노래하는 승려’로 영웅상이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이것은 활을 쏘는 전쟁 영웅이 아니라, 종교적인 위인에 대한 기대가 통일신라에 만연했음을 뜻했는데, 통일신라는 정복의 시대가 아니라 불교를 국교로 하여 국가적 안정을 추구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민담의 심층’(저자 가와이 하야오)에서는 일본의 유명한 전래동화인 요괴를 퇴치하는 복숭아소년 ‘모모타로’ 설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모모타로를 따라다니는 동물들이 사실은 모모타로의 여러 속성을 의인화한 거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요괴가 백제 패망 이후의 일본으로 넘어온 백제 잔존세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일단 그냥 넘어가자.)

 

 

그는 “우리는 영웅에게 이상적인 상을 부여하고 싶은 나머지 영웅의 이미지에 상응하지 않는 속성은 종종 영웅의 주변적 속성으로 기술한다.”라며, 오니를 잡기 위해선 문에 기어오르거나 할퀴어야 하는데, 그런 건 ‘영웅’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슬쩍 부하에게 떠넘긴 것이라고 부연했다.

 

 

‘신이 된 인간들’(저자 박정원)은 우리나라 명산에 자리한 여러 산신에 대해 다뤘다. 보통 그 연원을 보면 구시대의 창세여신, 쇠락한 부족과 국가의 시조신, 나라의 안녕을 위한 호국신 등이 여러 이해관계 속에 산신으로 좌정하는데, 그중엔 당대의 영웅으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산신으로 격상되는 경우도 잦았다.

 

 

이 책은 고구려 멸망을 주도한 당나라 최고의 장수 설인귀가 감악산의 산신이 된 독특한 케이스를 다뤘다. “신라는 설인귀를 내세워 고구려 유민들의 공포감을 유발하고 고구려 멸망은 신라보단 당에 의해서 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했다.”라며, 아울러 농민 출신으로 당나라 최고 장수에 오른 그 영웅적 일대기를 알려 피지배층을 교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최고의 장군신으로 통하는 최영 장군은 민중에 의해 신이 된 영웅이다. 훌륭한 업적에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가 민심을 사로잡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보통 영웅이 신으로서 좌정하기 위해선 사후 신격화 작업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친 전승이 이뤄져야 하며 보통 200년 내외가 걸린다. 그런데 최영 장군이 신이 되는 데엔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카리스마 있는 삶이었던 것.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구국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 또한 군부정권의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바 있다. 불세출의 영웅인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흠모했다는 고 박정희 대통령은 나폴레옹 정권이 잔 다르크를 자신들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한 것처럼, 자신들 또한 이순신 장군을 적극 전면에 내세웠다.

 

 

나폴레옹은 ▲둘 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출생했다는 것(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섬, 잔느는 동레미라퓌셀), ▲둘 다 대포를 주력으로 사용한 장군이라는 것, ▲둘 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는 것 ▲둘 다 정규군이 아닌 시민군을 주축으로 했다는 것 등을 빌어, 구국의 성녀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웠고, 고 박정희 대통령 또한 ‘무능한 정부를 대신하여, 외적으로부터 나라 지킨 이순신’의 이미지를 더하려 했다.

 

 

박 대통령 또한 세 위인과 유사한 포병장교 출신이었다 보니, 이 네 인물을 묶어놓으면 얼추 비슷비슷했다. 그러니 잔느의 휘광을 나폴레옹이 나눠갖고 싶어 했듯, 우리나라 군부정권도 이순신의 명성에 함께하고 싶어 했고, 나폴레옹이 황제에 올라 유럽을 준동케 했던 것처럼 박 대통령 또한 그에 준하는 지위에 올려야 맞지 않겠냐는 감각적인 어프로치를 시도했다.

 

 

당대의 영웅이었던 잔 다르크와 이순신 장군이 죽어서도 권력의 도구로 단물 빨리는 것 같아 이맛살이 찌푸려질 수 있겠다만, 그래도 이 두 정권 덕분에 두 영웅이 보다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제아무리 최고의 장군신으로 최영 장군이 칭송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비주류인 무속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아무리 민중이 들끓는다고 해도 사회가 응하지 않으면 거기까지인 것이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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