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만 원 받던 지난 직장보다 정확히 백만 원이 줄어든 금액.
그 돈으로 6개월을 버텨야 했다.
원장이 내건 당근은 두 가지였다.
수습 기간 동안 일을 잘하면 3개월로 줄여주겠다는 것,
그리고 수습이 끝나면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것.
당근을 주는 듯한 그녀는 무질서한 얼굴로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꼬리는 비죽이 올라가 있었고, 눈빛엔 ‘네가 감히 이 조건을 마다할 자격이 되냐’는 뉘앙스가 어른거렸다.
“무경험 주제에 감사한 줄 알아야지.”
그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얼굴 전체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도 시작해야 했다.
55 사이즈가 숍 매니저로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인 것처럼 그녀가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는 출근과 동시에 서서 일하기 시작했다.
점심 한 끼는 포기할 수 없었기에 먹되, 움직이며 빼는 쪽을 택했다.
익숙하지 않은 서 있는 자세는 다리를 바닥에 묶어놓은 것처럼 아팠다.
처음엔 종아리가 시큰거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물렁거리던 근육은 단단하게 굳어갔다.
숍 매니저 일은 낯설었다.
첫 달은 원장에게 혼나고 무시당했던 기억들 뿐이다.
부자연스럽게 인사한다고 혼나고, 계산할 때 현금 유도 안 한다고 혼나고, 직원들 관리를 잘 못한다고 혼나고, 살 안 빠진다고 혼나고.
우스운 일로 혼난 적도 있었는데 화장실 갈 때 휴지를 둘둘 말아간다고 혼난 일도 있었다.
직원용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었다.
절약을 이유로 카운터에서 딱 쓸 만큼만 뜯어가야 했다.
소변은 3칸, 대변은 10칸.
숫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녀는 진지했다.
내 웃음에 그녀는 경멸 섞인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내 말이 우습니?”
30명쯤 되는 직원들. 메이크업실 3명, 헤어디자이너 5명. 나머지는 전부 스텝이었다.
그녀는 우리 모두를 군림했고 왕좌에 앉은 독재자였다.
그녀가 가진 단 하나의 미덕은 월급을 밀리지 않는 것.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런 그녀가 유독 아끼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메이크업 실장은 나와 동갑이고 A급 브랜드 숍 출신이라 했다.
B급 정도 되는 이 숍에 그녀가 온 것은 원장이 간절히 원하고 공들인 노력 덕분이었다.
실장은 능숙했고, 여유 있었고, 내가 닿지 못하는 영역의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원장은 늘 내게 말했다.
“상담할 땐 실장 옆에 붙어서 잘 배워.”
내가 입사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원장이 애지중지 모셨던 실장은 갑자기 사표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
그때 독재자 스크루지 원장이 무너지는 모습을 처음 볼 수 있었다.
철벽 같던 그녀의 권위가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을, 그토록 완고했던 체제에도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작은 왕국도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