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이 9시 30분을 가리키면, 미용실 로비에는 마치 군대 조회처럼 직원들이 일렬로 서 있곤 했다.
원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날카로웠고, 그의 지적은 화살처럼 직원들의 마음을 찔렀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마치 죄인들처럼 보였고, 마지막 의례적인 박수소리는 공허하게 로비를 맴돌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분위기를 바꿔보자고.
"원장님, 앞으로 제가 조회를 진행해도 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원장에게 제안했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려졌지만, 곧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 조회 날, 나는 손에 작은 메모지를 들고 서 있었다. 그날 아침 버스에서 읽은 책 속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행복은 습관이다.' 오늘은 이 글귀로 하루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점차 따뜻한 미소가 번져갔다. 전달사항은 간결하게, 지적이 아닌 안내의 톤으로 바꿨다.
"오늘 하루도 모두 행복하게 웃으며 일하시길 바랍니다!" 내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졌을 때, 직원들의 박수는 더 이상 의례적이지 않았다.
조회가 끝나면 나는 카운터 자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만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저번에 오셨던 김 디자이너 고객님이시죠?" 재방문 고객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그들의 표정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밝아졌다. 나는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연결고리라고 믿었다.
탈의실로 안내하는 짧은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오늘 코트 정말 잘 어울리세요. 어디서 구입하셨어요?"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특별한 관리법이 있으신가요?" 작은 칭찬들이 모여 고객들의 마음을 열었다. 퉁명스럽던 고객도 내 앞에서는 미소를 지었다.
VIP 고객들을 위한 나만의 비밀 노트도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선호하시는 박 사모님, 파스텔 톤을 좋아하시는 이 교수님, 건성 피부를 고민하시는 최 원장님... 작은 메모들이 쌓여 큰 신뢰가 되었다. 헤어 시술로 지루해하는 고객 옆으로 살짝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사모님, 저번에 말씀하신 그 드라마 보셨어요?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럴 때면 고객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가 내 하루를 밝게 만들었다.
고객들의 칭찬이 늘어났고,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스크루지 같던 원장의 잔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카운터는 직원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20-30대 미혼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실장님, 남자친구가 너무 답답해요." "실장님, 원장님이 또 뭐라고 하시는데..." "요즘 인생이 너무 막막해요." 연애 상담부터 인생 고민, 때로는 원장 험담까지. 나는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든든한 언니가 되었다.
예전 이곳은 독재와 갑질의 공간이었다고 했다. 퇴사한 메이크업 실장의 폭언과 원장의 무자비한 관리 때문에 직원들이 수시로 그만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원장의 오른팔이 된 내가 완충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실 휴지 사건이었다. 원장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직원용 화장실 휴지를 극도로 아꼈던 것이다. 나는 애교를 섞어가며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원장님, 직원들 복지가 고객 서비스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부터 챙겨주시면 어떨까요?" 결국 휴지 개수를 세는 우스꽝스러운 일은 사라졌다.
퇴근 후 마음 상한 직원들과 맥주 한 잔 하며 푸념 들어주기, 소개팅 주선하기, 사비를 털어 소규모 회식 만들기... 이 모든 것들이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직원들은 점점 마음을 열었고, 미용실 전체의 분위기는 따뜻해져 갔다.
수습 기간 6개월 동안 받기로 한 월급은 고작 80만 원이었다. 하지만 메이크업 실장이 퇴사한 후, 불과 3개월 만에 150만 원으로 뛰었다. 원장은 구박받던 쭈글이였던 나를 이제 믿을 수 있는 대체자로 인정했다.
나에게는 변함없는 철학이 있었다. '내가 받는 월급보다 나는 100배의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일한다.' 이 각오로 매일을 살았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직업정신이었고, 삶의 철학이었다.
미용실의 하루는 더 이상 훈계와 지적으로 경직된 공간이 아니었다. 따뜻한 글귀로 시작되는 하루, 진심 어린 서비스로 채워지는 일상, 서로를 배려하는 동료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활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적의 중심에서,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밝게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