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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원의 여자, 압구정동에서 일하다.

by 정희승


스물일곱 살의 나는 한 달에 용돈 15만 원으로 살고 있었다.


엄마가 내 월급을 모두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15만 원이라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내기란 여간 빠듯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면접에서 받은 모독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살면서 외모 지적을 받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외모로 기죽거나 열등감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난과 열악한 가정환경 등 외부적인 요소들로 인한 자격지심은 있었지만, 그런 결핍이 자존감을 갉아먹는 성격은 전혀 아니었다.


대단히 미인이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늘 웃는 인상이었고 어릴 때는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제법 있어서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학교에서 이름을 날린 적도 있었는데, 촌년이 웬 말인가.

게다가 남편은 나를 첫눈에 반해서 쫓아다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원장이라는 사람이—죄송하지만 정말 비호감의 얼굴을 가진 분이었는데—감히 나를 그런 식으로 평가했다는 게 분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 당시 연인이었던 남편은 내가 출근하기 전에 갤러리아 백화점 타임 매장에 데리고 가서 정말로 옷 한 벌을 사주었다.

나는 돈을 벌면 꼭 남편 옷도 선물해 주겠다는 각오로 첫 출근길에 올랐다.


웨딩 매니저로 들어간 그곳에서 처음 한 일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받는 일이었다.

원장은 전체적으로 숍이 진행되는 사항을 알아야 한다며 카운터 일을 보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진하고 멍청해 보이는 촌년을 카운터도 시키고 직원 관리도 시키고 웨딩 일도 시키려는 개수작이었던 것 같다.


압구정동에 처음 발을 내디딘 나는 원장이 하라는 대로, 아니 스스로 더 찾아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은 9시 30분, 퇴근 시간은 저녁 8시. 주말까지 근무하고 매주 월요일만 휴무.

연월차는 당연히 없었다.


내가 맡은 업무를 차근차근 적어보면 이랬다.

카운터에 서서 고객이 오면 인사하고 안내하는 일, 고객을 탈의실로 안내하여 옷과 가방을 보관하고 담당 디자이너에게 연결하는 일, 예약 전화를 받고 디자이너들과 메이크업실에 스케줄을 안내하는 일, 계산하는 일, 헤어와 메이크업실 제품을 주문하고 거래처별로 결제하는 일,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 웨딩 문의가 오면 상담하고 계약하는 일, 웨딩플래너 업무, 원장 비서 업무, 그리고 아침마다 은행 업무까지.


이것보다 더 많은 잔무들이 있었지만, 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적어본다.

그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나는 점점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누가 될 수 있는지를 발견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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