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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가 예술이 되는 순간

사유하는 비디오: 움직이는 이미지의 반란

by 유하리 예술철학자


요즘은 비디오 아트라는 단어를 잘 안 들어보셨죠?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로도 많이 구분되곤 했었는데요.

디지털 기반 영상과 소셜 미디어가 일상이 된 현재에는 더 이상 '미디어 아트'라는 말조차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요즘 예술가들이 만드는 작품의 여러 형태 정도로 여겨지고 있지요.


이러한 요즘 예술이 시작된 시점을 한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편은 비디오 아트를 개괄적으로 설명을 하다 보니, 작품 얘기도 없고 조금 밋밋할 수 있지만요. 이어지는 연재에서 주요 작품과 예술가 등을 순차적으로 설명해 드릴게요! 조금만 참고 따라와 주세요!


1960년대 중후반, 새로운 예술이 태동합니다. 이전까지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질료인 캔버스나 붓, 오브제가 아닌, 카메라와 모니터, 그리고 전자 신호로 이루어진 예술입니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로 정의하지만, 단순한 ‘영상’이나 ‘기록’으로서의 비디오 활용은 아니었습니다.
비디오 아트의 탄생은 단지 새로운 매체의 도입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예술가들이 기존 장르의 틀을 허물고자 했던 근본적인 시도, 즉 상호 매체성(intermedia)이라는 화두를 던지게 되었죠.


이 시기 많은 예술가들은 ‘회화’, ‘조각’, ‘음악’, ‘연극’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 장르의 구분에 회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예술은 더 이상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시간, 공간, 소리, 움직임, 참여를 아우르는 종합적 실험의 장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비디오는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매체였던 거죠.


상호 매체성이란 1960년대의 실험예술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시인 겸 예술가 딕 히긴스(Dick Higgins)가 1966년 플럭서스(Fluxus) 선언문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입니다. 그는 “상호매체성은 두 개 이상의 예술 장르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형식”이라 설명하면서, 예술이 더 이상 하나의 장르 안에 머무를 수 없음을 주장했는데요.


점점 장르 간 융합이 하나의 작품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상화되었죠. 음악과 무용과 미술이 모든 하나의 영상 안에 담겨 있고요.


비디오 아트는 이 상호매체성의 결정체였던 거지요.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촬영했고, 어떤 이는 전자 신호를 조작하여 추상적 이미지와 소리를 생성했으며, 또 다른 이는 텍스트, 설치, 움직임, 오브제를 결합한 복합적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여기서 비디오는 단순한 기록 장비가 아니라, 장르 간 실험을 실현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되어주었던 것이죠.


비디오 아트의 상호매체성은 플럭서스 운동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뉴욕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했고요. 조지마키나우스, 백남준, 오노요코 등으로 대표되는 플럭서스는 ‘예술은 삶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악보 없는 음악, 일상 사물의 재구성, 참여 중심의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예술의 정의 자체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기록될 필요가 있었고, 비디오는 이들의 실험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매체였던 것이죠.


또 다른 비디오 실험 형태로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조안 조나스(Joan Jonas),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등도 각각의 방식으로 상호매체성을 실현해 냅니다. 나우만은 자신의 몸을 조각 도구처럼 활용해 ‘움직임’을 탐색했고, 조나스는 거울과 제스처를 통해 여성성과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구성합니다. 이들의 작업은 퍼포먼스이면서 동시에 비디오이자 설치이고, 텍스트이자 사운드이기도 했습니다.


비디오 아트의 핵심은 단지 ‘움직이는 이미지’를 제작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상이라는 언어를 빌려, 지각과 해석의 구조 자체를 낯설게 만들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경험들, 매체로 인해 영향받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거였죠.

텔레비전이 집집마다 보급되고, 대중이 영상 소비에 익숙해진 시점에 등장한 비디오 아트는 오히려 그 익숙함에 대해 사유하게 합니다.


즉, 비디오 아트는 이미지의 기술이 아니라 사유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캔버스를 바라보며 사유에 빠지듯이요. 우리가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기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형식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예술가들이 주로 사용하게 됩니다. 물론 당시의 젊은 예술가 들이었겠죠.

그 시대에서 가장 실험적인 것을 원하고, 빠르게 기술을 체득할 수 있었던!


비디오는 종종 필름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움직이는 이미지’ 매체들과 비슷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모두 시각적 연속성을 기반으로 하고, 시간 기반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비디오는 기술적 구조와 작동 방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기록 방식과 저장의 성질에서 비롯되는데요.
비디오는 음향과 영상 정보를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 신호로 즉각 전환하고, 기록과 저장이 실시간으로 동시에 일어납니다. 정보는 자기 테이프, 레이저디스크, 디지털 파일 등 다양한 형태로 저장되고, 재생과 복사가 매우 용이한 장점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비디오는 반복적이고 영속적인 재생, 그리고 정보의 복제 가능성이라는 특성을 지니면서, 이제 비디오 작품을 어떻게 예술로써 '소장' 할 것인가? '가치'를 매길 것인가 라는 문제도 이슈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앞으로 전개될 예술가들의 작품이 현대미술에서 얼마나 자주 평가되고, 끊임없이 질문을 불러일으켰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모르고 지나가기엔 너무 중요해서, 꼭 알아야만 하는 비디오 아트의 역사! 연재를 따라오다 보시면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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