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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나우만의 비디오 실험: 신체, 공간, 시간

앞선 연재에서 설명했듯이 비디오 아트는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매체 기반 예술로, 기존의 영화 문법을 계승하기보다는 이를 비판적으로 해체하거나 전복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영화나 텔레비전의 콘텐츠가 대중성과 상업성을 띈 부분과는 차별되는 부분인 것이죠. 당시 기존의 예술형식에 반발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비디오는 기존 권력을 해체시키고 아방가르드한 발언을 할 수 있게하는 실험 매체로 다가왔습니다.


기존의 영화나 텔레비전이 대표하던 영상문화의 특징인 내러티브(이야기) 중심의 서사나 클로즈업이나 몽타주 같이 관객에게 재미 요소를 주는 영화적 기법, 극적인 감정 표현과 같은 요소는 비디오 아트의 초창기 작업들에서 종종 제거되거나 무력화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술가들이 비디오라는 매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게 되면서, ‘비디오 아트’는 시간, 신체, 지각, 기록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축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미술관을 갔을 때, 어떤 전시에서나 영상 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계기이겠지요?

비디오, 영상이라는 장르가 현대 예술가의 언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 )은 이런 흐름 속에서 비디오라는 매체를 탐구한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네온 텍스트 등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며 매체의 특성과 인식 구조에 대한 실험을 지속해왔는데요.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는 비디오를 하나의 사유 도구로 활용하며, 신체적 행위를 기록하고, 그 반복성과 제한성 속에서 매체적 조건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은 영상으로 보아야지만 예술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느낄 수 있기때문에, 꼭 유튜브를 찾아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나우만을 찾아보면 처음에 뜨는 이미지들이기도 한 <Wall/Floor Positions>(1968)는 그의 대표적인 초기 비디오 작업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단순한 규칙에 따라 자신의 신체를 바닥과 벽 사이에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동작을 수행하는데요.


고정된 카메라 시점은 전체 행위를 일관되게 기록하며, 관객은 편집이나 해설 없이 신체의 움직임과 공간적 구조를 직접적으로 목격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는 서사적 맥락이나 상징적 장치가 거의 배제되어 있으며, 그 대신 시간의 경과, 행위의 반복, 신체의 제약 등이 중심 요소로 보여집니다.



신체적 제약, 타고난 것들(성별, 인종, 문화배경 등등)에 대해 동의하고, 인간을 압박하는 트라우마 같은 것으로서 표현해내는 것이 작품이 갖는 주제인데요. 이러한 부분을 초점을 맞추신다면 간혹 아름답거나 영상미가 있어 깊이있게 읽혀지지 않는 그의 작품이 단순하게 구상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Wall/Floor Positions>은 비디오가 단순한 기록 장치를 넘어, 존재와 공간, 시간과 인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매체적 실험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브루스 나우만은 이 작업을 통해 비디오 아트가 내러티브 중심 영상과 구별되는 고유한 미학적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는데요.


후대의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아마도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예술가들이 제작하는 퍼포먼스 기반 비디오 아트나 설치형 비디오 작업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디오 아트는 이처럼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시청각 매체의 서사적 전통에서 벗어나, 시간 기반 예술(time-based art)이라는 또다른 네이밍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오고 있습니다. 브루스 나우만의 작업은 그 전환점에서 중요한 이론적, 미학적 사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살펴보신다면 우리 동시대의 예술가들에게 그의 작품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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