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예술, 그리고 연결의 미학
현대미술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예술 페스티벌이자 실험적인 동시대 예술을 소개하는 장으로 평가받는 <카셀 도큐멘타 Kassel Documenta> 방문해보신 적 있으실까요?
카셀 도큐멘타는 무려 4년의 준비기간과 1년의 홍보기간을 거쳐서 5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현대미술 행사입니다. 100일 간 열려있고요.
카셀 도큐멘타가 소개한 당대의 예술가들과 실험적인 예술 형식들은 이후의 현대미술의 형식을 바꿔놓다는점에서, 이 행사가 예술계에 가히 파격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미디어 아트 라는 장르를 현대미술의 영역안에 제대로 위치시킨 카셀 도큐멘타 6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1977년 독일 도시 카셀에서 열린 제6회 도큐멘타(documenta 6)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데요. 이 전시는 단순히 새로운 매체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비디오, 사진, 영화, 텔레비전, 인공위성 통신 등 다양한 미디어를 동등한 예술 형식으로 전시 구조에 통합함으로써 미디어아트를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제도권으로 끌어들어들였습니다. 특히 이 전시에서 시도된 인공위성 생중계 퍼포먼스는 예술이 기술을 매개로 실시간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디지털 시대의 예술 개념을 선도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도큐멘타 6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전통 매체(회화, 조각)뿐 아니라 사진, 영화, 비디오, 텔레비전, 출판물 등을 각각 독립된 섹션으로 배치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선구안의 시각을 가졌던 큐레이터의 역량이었겠죠!
기존의 현대미술 흐름에서 주변부에 머물던 미디어 표현을 중심 무대로 이동시키는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비디오아트는 단순한 기술적 보조 수단을 넘어, 시간성과 내러티브 실험, 실시간성, 대중과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창의적 장르로 공식화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예술의 탈물질화, 정보화, 통신화라는 시대정신이 시각적으로 구현되었기에, 관람객(수용자)가 보는 예술을 범위를 넓혀주었죠.
도큐멘타 6의 하이라이트는 1977년 6월 24일 진행된 인공위성 생중계 프로젝트였는데요. 이 프로젝트에는 백남준(Nam June Paik),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더글라스 데이비스(Douglas Davis) 등이 참여하였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동시 방송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작품이었죠. 이 퍼포먼스는 기술을 매개로 한 예술의 글로벌 확장을 상징하며, 장소성과 일회성 중심의 기존 퍼포먼스 아트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기반 예술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백남준과 샬롯 무어만
백남준과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은 비디오, 음악,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였다. 텔레비전 수상기, 바이올린, 테이프 영상 등을 조합하여 기술과 인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결합을 구현했는데요. 그들의 위성 퍼포먼스는 예술이 기술과 연결될 때 새로운 형식과 감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더글라스 데이비스
더글라스 데이비스는 TV 화면을 매개로 관객과 실시간 소통을 시도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말하고 움직이며, "화면 너머의 당신과 연결되었다"고 말하며 관객에게 손을 화면에 대도록 요청합니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을 마구 두드리고 상대편에 있는 우리들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는 시청자)에게 말을 걸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참여형 커뮤니케이션 예술의 시초로 간주 됩니다.
도큐멘타 6가 시사하는 바는, 이 행사 이후로 비디오 아트, 넷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디지털 아트가 현대미술의 주요 장르로 편입되고, 현대미술에서 이어져서 성장하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특히 주요 국제 전시들이 미디어아트 섹션을 별도로 구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 이후였지요. 1980년대에는 백남준, 더글라스 데이비스 중심으로 비디오 설치와 위성 퍼포먼스가 확산되었고, 1990년대에는 웹을 기반으로 한 넷아트가 등장합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센서, 알고리즘, 프로젝션 기술 등을 활용한 몰입형 미디어 아트가 주요 양식으로 자리 잡았고요.
우리가 주변 거대 미술관이나 작은 갤러리에서도 미디어 아트 작품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이렇게 현대미술의 제도권 안으로 미디어 아트를 편입을 선구적인 예술가들과 큐레이터들이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카셀 도큐멘타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듯이, 1977년의 도큐멘타 6는 단순히 하나의 국제 전시가 아니라, 미디어아트가 제도권 현대미술로 편입되는 역사적 순간이었고요. 이 전시는 기술과 예술,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예술가들의 질문을 시각화하고,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방식의 예술을 현실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큐멘타 6는 예술이 더 이상 고정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데이터를 통해 글로벌하게, 비물질적으로, 상호작용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선언한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