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하고 부드럽던
할머니,
평생 글을 제대로 써본 적 없는 나에게
얼마 전 글이 나를 살리려는 듯 찾아왔어.
어린 시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적다 보면
오래된 상처가 조금씩 치유될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거든.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할머니였어.
어릴 적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라고 부른 기억은 거의 없지만
마음 한켠에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어.
말랑하고 부드럽던 목 주름
그걸 만지다 스르르 잠이 들던 순간
불편하셨을 텐데도 날 꼭 안아 주셨던 그 품
그 달콤한 기억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추억이자
가장 행복했던 어린 날의 순간이야.
다섯 살쯤이었을까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중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지셨지.
놀란 나는 아빠를 황급히 불렀고
낫을 든 채 부엌에서 뛰쳐나온 아빠의 굳은 얼굴이
아직도 어렴풋하게 떠올라.
그날, 할머니만 의지하던 아빠는 세상을 잃었고
나는 엄마 같은 할머니를 잃었어.
할머니가 떠난 뒤
엄마의 빈자리와 아빠의 무관심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부모님을 원망하며 살았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하지만 이제는 알아
원망은 내 인생을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화해하려고 해
그래야만 내가 온전히 설 수 있을 것 같아
할머니,
치유의 여정을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용기가 많이 필요하겠지
넘어질 때도 있겠지
그래도 나는 나를 세우며 일어설 거야
내가 새롭게 태어날 때까지
끝까지 곁에서 지켜봐 줘
언제까지나 사랑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