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만나러 가야 해
아빠,
나는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축축하고 질퍽한 한숨이 새어나와.
마치 매캐하고 쾨쾨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 창고로 한 발, 한 발 내려가는 기분이야.
내 마음속에 아빠는 여전히 거기 홀로 서 있어.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그동안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만나러 가야 해.
아빠를 만나야만
내 마음 깊은 상처를 꿰맬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
아빠는 청력을 거의 잃으셔서
나는 언제나 목소리를 높여야 했어.
짧은 대화조차 이어가기 힘들었지.
마음먹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아빠는 인상 쓰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고
고개를 돌리곤 했어.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어.
그 분노는 허공을 맴돌다
결국 내 가슴에 박혀
단단한 돌이 되어버렸지.
‘아!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한숨과 신음이 가슴속에서 차오르면
어느새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나를 방치하며 무심했던 아빠를
그땐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지.
아빠를 미워하는 만큼 죄책감이라는 고통에 시달렸고
나는 이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
아빠를 한 사람으로서 이해하기로 결심했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친척들이나 이웃들에게 물어봤어.
아빠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아빠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했거든.
작년에 친척 아저씨가 그러시더라.
아빠가 어려서부터 귀가 안 좋았다고.
난 내가 국민학교 6학년쯤,
아빠가 심하게 앓고 난 뒤 청력을 잃은 줄만 알았거든.
그런데 원래 어려서부터 귀가 약했다고 하더라.
아빠는 한쪽 눈이 틀어져 있었어.
사시 같았지.
그 모습이 창피해서
아빠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멀리 있는 친척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아빠가 어릴 때 너무 울어서
눈 한쪽이 틀어졌다고 하더라.
대체 어떻게 살아왔어
청력은 거의 잃고,
눈 한쪽은 불편하고,
아내마저 떠나고,
하나뿐인 딸은 냉랭하고…
그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버텼어
견뎠어.
아빠는
내 인생의 희미한 엑스트라 같았는데,
이제는 어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아빠가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어
아빠의 인생이 내게 말을 걸어.
“이해해 줄 수 있겠니?”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작은 여자아이가 밤새 울게 만들고,
가난 때문에 야반도주하듯 이사 다니게 하고,
화장실이 없어 급히 옆집으로 달려가게 했던 아빠.
그런 아빠가 내 전부였는데....
이제 이해가 안 되었던 아빠라는 존재를 내려놓고
연약한 한 사람으로 마주하니
애처롭기 그지없는 한 아이가 울고 있는거야.
나도 울면서 아빠를 꼭 안아주었지.
그러자
사랑받은 기억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거야.
국민학교 3학년쯤,
장날에 산 검정 손목시계를 빨리 주고 싶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아빠 모습.
스물 중반쯤, 큰 몸살에 걸렸을 때
찬물에 수건을 빨아 밤새 내 열을 식혀주던 아빠.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왔던 아빠
아빠가 나를 사랑했던 순간이.아껴줬던 모든 순간이.
아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울던
작고 소중한 아빠,
내가 찾아갈게.
눈과 귀가 불편해 버거운 삶을 살아온 아빠,
내가 손잡아 줄게.
꼭 안아주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게.
너는 소중하고 사랑스럽다고,
태어나 줘서 정말 기쁘다고
말해줄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도.
이 세상에 태어나 줘서 고마워.
나를 포기하지 않고
힘든 인생을 버텨줘서 고마워.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줘서 고마워.
아빠,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빠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또 얼마나 강했는지.
나도 아빠처럼,
삶의 어려움을 견디며 꿋꿋이 살아갈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게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웃자.
아빠,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