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따뜻한 엄마 품

by 내사랑예봄아

15년 전쯤, 결혼을 앞두고 살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 본 집은 주인이 이사를 떠나며 모든 짐을 빼버린 빈집이었다. 세월의 묵은 때가 그대로 남아 있는 칙칙하고 어수선한 공간이었다. 텅 빈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콘크리트 냉기 때문인지, 들어서기 전 들떴던 마음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은 마치 오래도록 버려진 가여운 유기견 같은 집이었다. 나는 잠시도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두 번째로 본 집은 꼭대기 층이었다. 겨울엔 더 춥고 여름엔 더 더운, 사람들이 꺼리는 조건이었다. 몇 달째 매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 부부와 다섯 살쯤 된 여자아이가 거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안방 문을 열었을 때, 포대기에 감싸인 갓난아이가 누워 있었다. 순간, 몸이 굳었다. 눈코입이 작고 야리야리한 아기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연약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함과 신성함이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네 식구가 함께 사는 모습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어서, 그 집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이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우리의 집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작년, 지인의 집들이에 초대받아 30평형 새 아파트를 방문했다. 거실에는 소파와 TV, 장식장과 몇 개의 소품만 놓여 있었다.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했다.정돈된 집은 보기엔 좋았지만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겨울 들판에 홀로 선 듯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공간이 꼭 무엇으로 채워져 있어야 온기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빈자리를 보면 늘 허전했다.

그래서 우리 집의 대부분 공간은 크고 작은 것들로 가득하다.


어느 날, 집 안이 너무 어수선해 몇 가지 물건을 정리했다. 하지만 텅 빈 공간을 보니 마음까지 공허해지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다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어린 시절 내 집은 늘 비어 있었다. 책도 장난감도 마음을 나눌 반려동물도 없었다. 가구라곤 텔레비전과 장롱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가끔 기둥 사이에 고무줄을 묶고 팔짝팔짝 뛰기도 했지만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눈을 감고 공상에 빠졌고 시간이 훌쩍 흘러간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를 놀아주는 건 ‘나의 생각’이 되었다.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오면서, 돌봄과 사랑이 가득한 집을 꿈꾸게 되었다. 세상살이에 지쳐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이 돌아와 다시 회복되고 치유되는 곳. 그 힘으로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집. 바로 그런 집을 만들고 싶었다.


특히 아이가 자라는 집이라면, 서로 살을 부비고 마음을 나누며,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그런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망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따뜻한 엄마의 품 같은 집에서 살아가기를. 세상이 살 만한 곳임을 마음 깊이 느끼며, 희망으로 빛나는 미래를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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