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땀 냄새가

코끝에 살랑 거렸다

by 내사랑예봄아

어느 날 우연히 맡은 익숙한 냄새가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을 불쑥 떠올리게 한다. 쓸쓸함과 설렘 따뜻함 같은 감정들이 냄새를 타고 되살아나고 그 감정에 배어 있는 아련함은 어느새 그리움으로 번져간다.


남편은 지포 라이터의 휘발유 냄새를 맡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고 했다. 고요히 잠든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지포 라이터.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가끔 맡게 되는 하수구 냄새가 어릴 때부터 좋았다. 시원하면서도 습한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람들에게 하수구나 창고 냄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나조차도 나 자신을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냄새가 좋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창고처럼 쓰였다. 그 방은 어딘가 으스스한 기운이 느껴져 나는 문틈만 힐끔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호기심이 생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안 곳곳에는 두터운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부서진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습하고 쾨쾨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름 참을 만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퍼가 고장 난 커다란 여행가방이었다.반쯤 열린 가방 안에는 색이 바랜 아이보리색 손수건이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잠시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레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그러고 나서 구석에 놓인 쨍한 노란색 장화가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럽고 예뻐 보였지만 괜히 손대면 안 될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마도 엄마의 물건이겠거니 짐작하며 엄마는 세련된 사람일 거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아빠 몰래 그 방에 들어가곤 했다.


추억의 냄새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아빠의냄새다.

농사일이나 공사 현장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아빠는 오후가 되면 지친 몸을 눕히고 낮잠을 주무시곤 했다. 어느 날 아빠의 등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그 옆에 누운 적이 있었다.


혹시 아빠가 깰까 아빠의 들숨과 날숨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눈을 뜨기라도 하면 얼른 도망치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아빠의 등 뒤에 살며시 몸을 붙이고 있으면 불쑥 땀 냄새가 코끝에 머물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좋아 몇 번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늘 불안으로 쿵쿵 뛰던 심장이 그 순간만큼은 잠시 조용해졌다.


긴 세월을 돌아 다시 맡은 추억의 냄새는 나를 그 시절 풍경 속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립고 사랑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해 꾹꾹 눌러 삼켰던 마음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엄마 보고 싶어.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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