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수십년이 흘러도 가슴에 남아

by 내사랑예봄아

나는 종종 택배로 꽃을 받는다. 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면 화사한 꽃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주일 동안 집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꽃은 없다. 내 눈에 예쁘면 그게 다 좋다.


언제부터 꽃을 좋아했을까. 생각해보니 열 살쯤부터였던 것 같다.


집 근처에는 또래도 없었고 외동인 나는 자주 산과 들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이름 모를 들꽃을 바라보고 네잎클로버를 찾으며 허기진 마음을 조금씩 채워갔다. 산에 다닐 때는 무서워서 마구 뛰어다녔다. 가끔 산소를 만나면 넙죽 인사하고 몇 마디 중얼거리면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떠돌다 친척 언니 어머니의 산소에도 가게 되었다. 산 입구의 허허벌판, 나무 한 그루 없는 무덤은 어린 내 눈에도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가보니, 무덤에 형형색색의 꽃다발이 꽂혀 있었다.

보자마자 예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그만 ‘휙’ 뽑아 들고, 누가 볼까 가슴이 막 뛰었다.

앞만 보고 집으로 달리며, 방에 들어서자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 벽 위에 걸었다. 어둡고 칙칙하던 방이 순식간에 환하게 빛났다. 밥을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잠들기 전에도 나는 그 꽃을 바라보았다. 예쁜 아가씨를 몰래 바라보는 총각의 마음처럼, 가슴이 설렜다.


얼마 뒤, 친척 언니가 엄마 산소를 다녀온 뒤 우리 집에 들렀다. 나는 언니가 꽃 이야기를 꺼낼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 저 꽃 산소에서 갖고 온 거니?”
“아니, 아니.”
“그럼 어디서 났어?”
“그냥 누가 줬어.”

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몇 십 분을 걸어온 언니는, 손에 꼭 쥔 꽃을 엄마에게 주고 싶어 얼마나 설렜을까. 그런데 그 꽃이 느닷없이 내 방에 꽂혀 있으니….


미안한 꽃다발이 그 하나뿐이랴. 어떤 꽃들은 수십 년이 흘러도 가슴에 시리도록 남아 있다.


“○○아 오늘 졸업식이지?”

아빠가 물으셨다,


아빠의 초라한 모습이 늘 창피했던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 혹시 아빠가 올까 걱정하며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웃고 떠들다가 무심코 돌아보니 아빠가 꽃다발을 들고 서 계셨다.


색이 바랜 흰 잠바와 복숭아뼈까지 오는 검은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동네 친한 언니는 그 바지를 볼 때마다 ‘잭슨 바지’라며 깔깔대곤 했다. 아빠가 그 바지를 더 이상 입지 않기를 늘 바랐는데, 그날도 여전히 그 바지였지만 깨끗하게 세탁된 상태였다.


아빠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생전 처음 보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나는 얼어붙었다. 아빠의 꺼무스름한 피부와 깊은 주름은 꽃다발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낯설었다.


우리는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내밀 듯 아빠는 수줍게 서 있었다.

축하한다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빠가 든 꽃을 재빨리 낚아채고, 도망치듯 친구들 쪽으로 달아났다.


그때 아빠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계셨는지는 모른다.

가끔은 아빠가 꽃다발을 든 채,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내 사랑을 받아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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