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간들을
친구네 집이나 친척 집에 놀러 갈 때면 나는 늘 앨범을 펼쳤다. 태어나 자라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고 사진 몇 장뿐인 내 유년이 괜스레 서글펐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카메라를 동경했다. 첫 월급이 70만 원 남짓이던 시절, 몇 달을 모아 30만 원쯤 하는 최신 카메라를 샀다. 가정 형편에 비하면 큰돈이었지만 오래 품어온 꿈을 손에 넣은 순간 마음이 설렜다.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 삐걱거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빠가 나 몰래 서랍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뜨겁게 솟구쳤다.
“카메라 가져가지 마!”
소리를 지르자 아빠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방을 나갔다. 아침 일찍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카메라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아빠가, 동네 사람들과 여행을 갈 때면 유난히 들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얼굴이 환하게 밝았고 그 모습이 왠지 못마땅했다. 여행 갈 때마다 매번 카메라를 챙기려 했던 아빠였지만 대부분 카메라는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빠에게 고함치던 내 모습, 쓸쓸히 돌아서던 아빠의 뒷모습, 카메라를 처음 만지며 들떠 있던 아빠의 모습.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날의 죄책감은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못되게 군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최근 글을 쓰며, 그날 펑펑 울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억울함 때문에 울었지만 내면 깊숙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속마음을 알아차리고서 나는 비로소 나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한참 후, 사진첩 속에서 낯선 몇 장을 발견했다. 관광버스 창밖으로 스쳐가는 아파트 단지, 배 난간에서 바라본 잿빛 바다. 사진 속 풍경은 외롭고 쓸쓸했다. 아빠의 외로움이 그 안에 매어 있는 듯 느껴져 마음이 아팠고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후다닥 앨범을 덮고 사진을 깊숙한 곳에 감췄다.
딸이 그렇게 난리를 쳐도 아빠는 왜 그렇게 카메라를 챙기려 했을까. 아빠가 외로워 보인 건 내 시선일 뿐, 사진 속 아빠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렌즈를 바라보며 웃는 사람들은 마치 나를 반기며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찍어준 사진에 만족하며 기뻐할 때 나 역시 덩달아 행복감을 느낀다.
아빠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았던 세상은 어쩌면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서툴고 부족했을지라도 속마음은 분명 나를 사랑했다는 것이라 믿는다.
아빠가 마음껏 찍어보고 싶었을 그 세상을, 이제 내가 담아보려 한다. 세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하나씩 담아가며 렌즈 너머로 아빠와 나의 이야기가 조용히 이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