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불꽃은 아니었을까
20살 무렵 나는 의정부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무슨 일로 가던 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혼자 터벅터벅 걷던 내게 낯선 두 사람이 다가왔다. 부드러운 표정과 따뜻한 말투로 여러 가지 질문을 건넸다. 그 친절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모든 질문에 대답했다. 어른들이 다정하게 내게 질문하며 정성껏 들어주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존중받는 듯한 기분에 들떠 나는 그들이 이끄는 대로 역 앞 봉고차에 올라탔다.
잠시 후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본래의 목적을 드러냈다. 포켓용 시집 다섯 권과 시낭송을 녹음한 테이프 세트를 보여주며 구매를 권했다. 속았다는 생각에 불쾌했지만 그들의 친절이 변할까 두려워 내색하지 못했다. 얼떨결에 사게 된 시집을 펼쳐보니 알록달록한 색감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시를 반복해 읽다 보니 몇몇 시는 외울 정도가 됐다. 지금은 대부분 잊었지만 이 시는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나, 덤으로 – 황인숙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피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 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이 시를 읽던 당시 나는 집에서도 친척들 사이에서도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마음은 늘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살아 있는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버린 가지, 즉 삭정이를 떠올리면 울컥했다.
세월이 흘러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면 삭정이가 불쑥 떠올랐다.
사람들과 협력해 무언가를 해야 할 때면 내 손끝은 야무지지 못했고 남들이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아야 했다. 그럴 때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 감정이 길게 이어지면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또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다 뒤처지거나 잘 하지 못하면 얼마 않하고 그만둔 적도 많았다.
쓸모없다는 생각의 뿌리는 존재의 수치감 때문이라고 하던가. 나는 작년부터 나를 바꾸고 싶어 여러 가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잘 하지 않던 운동, 초급에서 그만둔 피아노, 그리고 글쓰기까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나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꼈다.
삭정이. 생명이 다한 마른 가지.
최근까지만 해도 그저 불쏘시개로 태어난 쓸모없는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그때를 돌아보는 글을 쓰다가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삭정이는 꺼져가는 불꽃을 살려 누군가의 차가운 몸을 덥히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불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삭정이는 내게 더 이상 쓸모없는 마른 가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명을 다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면을 잘 일구어 성실히 살아가면서도 이 세상에 따뜻함 한 줌을 남기고 가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