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늘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건 넓은 유리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에 커다란 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청소를 하고 가구 배치를 신경 쓰면 당장이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모습이다. 아니면 그런 분위기의 카페에 가도 되고, 유리창이 넓은 도서관에 가도 된다. 그 이상의 것들이 나에게 얼마나 더 커다란 행복을 줄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글을 써서 작가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름을 알리는 것? 그렇게 된다면 나는 행복할까? 그런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일 뿐...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일관되게 그런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뿐이었다. 그동안 여행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슴 설레는 장면도 여행지의 어느 곳에 앉아 책을 읽고 경치를 보며 몽상에 잠기는 모습일 뿐... 다른 것들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더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정작 그런 일들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버라이어티 한 활동이라던가, 다양한 음식이나 화려한 공연이라던가... 또 뭐가 있을까... 생각이 더 이상 나지도 않는 걸 보면 경험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것들은 그렇게 인상에 남지 않고 끌리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이전 글에서도 결과주의 사고방식, 주객이 전도되는 것에 대해 살짝 이야기했는데, 어려서부터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강박이 있었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무척이나 후회스럽다. 주변을 돌아봐도 온통 목적만이 가득하다. 성공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에 가기 위해, 꿈을 성취하기 위해, 작가가 되기 위해…. 현재의 우리는 결국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사는 존재일 뿐인가?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서'라는 말 이면에는 결국은 현재의 나에 대한 부정의 의미도 같이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러한 무엇인가가 되기 이전의 나는 가치 없게 생각하게 되고, 항상 부족한 채로, 그래서 그렇게 항상 결핍을 가진 채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현재를 충만하게, 내가 진정으로 좋아서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그 분야에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되어 돈이나 성공, 명예와 같은 것들은 그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주어지면 고맙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고, 설사 그런 것들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던 인생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을 텐데… 그런 화려한 것들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되는 것, 결과주의적인 사고방식일 뿐인 것 같다. 그런 목적을 위해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을 쫓기듯 앞만 보고 달리다가 다른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음악을 좋아하고 바이올린을 열심히 하면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던 시절에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들을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함께 연주하며 음악 속에 푹 빠져 몰입했던 시간들은 그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공연… 공연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이만큼 해서 잘한다고 보여주기 위한 '쇼'일까?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일까? 공연을 하면 축하를 받고 꽃다발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너무나 어색했다. 나는 그저 보여주기 위해 음악을 한 것이 아닌데…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받아야 하는 그런 음악 공연을 하기 위해 연주를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해서 그 속에 몸을 푹 담갔을 뿐이었다. 아마추어의 연주라는 것 또한 프로나 대가의 연주에 비해 무시받기 마련이라 나의 공연이 순전히 청중을 위해 들려주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었다. 공연 당일날 완성된 연주를 하기 위하여, 틀리지 않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고 떨지 않는 것, 음악 자체보다 그런 것들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연주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그 공연 자체를 '즐길 것' 일 텐데… 그러한 연주자의 즐기는 태도는 청중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어 진짜 한 마음이 되는 공연이 있을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결과물로서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담만 가득 안고 공연하게 되어 단지 보여주기 위한 '쇼'로 끝나는 경우도 있을 거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공연자가 얼마나 그 공연 자체를 즐길 수 있는가의 마음이다. 안 틀리고 성공적인 공연을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즐겁게 공연을 하다 보니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는 공연이 되는 것… 이것이 사실은 본질일 텐데, 공연 자체가 목적인 공연이라면 청중에게 기대할 것은 형식적인 박수뿐일 것이다. '대가'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그것을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게 되어 그렇게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대가'의 결과만을 보고 '대가'가 되고 싶어 대가들을 따라 하기만 하다가 현재를 희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연습을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연습을 '대가'가 되기 위하여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 그리고 '대가'와 같은 공연을 하기 위해 이만큼 잘한다고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라면 따르는 것은 청중의 평가일 것이고, 그 평가에 좌우되어 일희 일비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일상생활 작가가 되는 법'이라는 강의를 듣고 매일 쓰기 30일 과정을 하고 있다. '작가가 되기 위하여' 매일 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의 평가와 반응과 '좋아요' 표시에 신경이 쓰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유리창에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좋아 그렇게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사유들을 글로 적다가, 그렇게 하다 보니 꾸준하게 쓰게 되고, 꾸준하게 쓰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나도 모르게 늘어서 어쩌다가 작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처음부터 목적이 '작가가 되는 법'때문이라면 매일매일의 평가에 신경을 쓰다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초보 작가이기에 결국은 글쓰기를 포기해 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끝없이 나의 부족한 모습만 보이고, 결핍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좌절하다가 글쓰기의 즐거움보다는 괴로움만이 커져버려 이전까지 항상 그래 왔듯이 '절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나는 '글쓰기'를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작가가 될 이유도 없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작가가 되지 않을 거라면 글쓰기를 하지 않을 것이고, 작가가 될 거라면 글쓰기를 할 것인가? 작가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따라 내가 글쓰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여부가 달려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결과주의 사고방식이 아닐까.
사실 그동안 책 읽기에 욕심을 냈던 이유에서마저도 이 사고방식에서 결코 자유롭지는 못했다. 나는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더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에는 내 사고 자체를 책 속의 문장들로 채워버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거다. 하지만 책이 좋아서 읽다 보니 책 속의 문장들로 내가 채워져서 나도 모르게 다른 존재가 된 것과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읽기 싫은 책까지 억지로 고통스럽게 읽어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의 일상이 그렇게 고통이 되어버린다면 결국은 목적을 위해서 과정이 희생되고 책 읽기의 즐거움까지 빼앗겨버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는 것이 좋아서 읽을 책에 가슴이 뛰고 모임이 기다려지기에 이 일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 모임에서도 '멋진 발언'을 하기 위한 것이 만약 목적이라면 버벅거리는 내 모습이 얼마나 견딜 수 없었을 것인가… 견딜 수 없어 아마도 중도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즐거움보다 스트레스만 가득한 모임이 되었겠지…
그래서 나는 무엇을 꿈꾸는지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으로 변질될까 두려워 굳이 꿈꾸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살고 싶은 삶'이라는 말이 '되고 싶은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살고 싶은 삶'이란 그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책을 읽으며 가끔씩 떠오르는 사유를 글로 적기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러한 평범한 일상마저 가질 수 없는 많은 불행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조차도 과분하고 안일하고 미안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갖고 싶을 정도로 부러운 일상의 모습 아닐까…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청소만 하면 가질 수 있는 이 소중함을 하찮게 여길 정도로 '되고 싶은 삶'에 대해서만 꿈꾸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고, '살고 싶은 삶'을 지금 즉시 행동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살고 싶은 삶'을 위해 즉시 '청소'를 한다는 것도 어쩌면 결과주의 사고방식인지 모르겠다. 그냥 '청소' 자체를 좋아하고 싶다. 청소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하다 보니 바로 지금 이 공간이 내가 꿈꾸는, 유리창에 햇빛이 들어오고 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거실이 되어 있는 것… 그게 지금 가장 도달하고 싶은 경지인 것 같다. 지금 나의 거실의 모습이 꿈꾸던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 자체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장면을 꿈만 꾸고 살아왔던가를 반증하는 아이러니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