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특히 요즘 교사는 여러모로 힘든 직업임이 분명하지만 옛날 사람인 그녀에게 초등교사란 그저 내세우고 자랑하고픈 직업이었던 것 같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교육행정직 공무원 아들은 그야말로 최종 보스 내지는 끝판왕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럴 때는 목소리가 한 톤 낮아지면서 분위기가 다소 엄숙해진다. 처음 들을 때는 나조차도 경건한 자세가 될 뻔했으니. 늘 며느리 얘기부터 시작하는 건, 그렇게 능력 있는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사는 아들의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싶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나밖에는 없을 텐데도 아주머니는 매번 우리 며느리가 초등학교 선생인데, 우리 아들이 교육행정직 공무원인데,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마치, ‘얘한테는 얘기 안 해 줬었지! 얼른 알려줘야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처럼, 혹은 말 시작 전에 꼭 붙여 써야 하는 접두사처럼.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있는 유형이었다.
내 비록 지금 니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자식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란다.
나는 그녀가 가엾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끊임없이 교사며 공무원인 자식들을 상기시키는 건 자기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는 처절한 몸부림이면서 동시에 그녀만의 오롯한 행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생 식당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김밥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하는 나의 엄마도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를 보면, 안 그런 척, 딸이 다니는 회사와 딸이 사는 아파트 이름을 자랑스레 말하고 다닐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대개는 아주머니가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더라도, 마치 처음 들은 것처럼 귀 기울여 주는 흉내라도 내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유난히 그녀의 말이 거슬렸다. 아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아니다. 사실은, 며칠 전 아파트 공터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녀의 통화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의 웃음 띤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어둡고 답답한 분위기. 하소연하듯 잔뜩 늘어지는 말투와 한숨, 간간이 섞인 변명과 방어의 말들.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건대, 그건 분명히 딸과 대화하는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그것 또한 나의 엄마와도 몹시 닮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