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라긴 거창하고, 뭐 친구랑 같이 알아보고 있나 봐.”
“아니 지가 돈이 어디 있어서…. 그럼, 시험은요?”
“… 공부도 하던 애가 하는 거지. 재희가 너처럼 야무지고 똑똑한 애도 아니고…. 그리고 요즘은 공무원도 한물갔다더라. 너도 알지? 월급도 몇 푼 안 되고 상사들이 스트레스를 엄청 준대.”
오마이갓. 그러니까, 소식이 뜸했던 지난 한두 달 동안 서른네 살 먹은 남동생 유재희는 몇 년째 공부한다고 떠들어댔던 공무원 시험을 끝내 포기했으며, 지금은 무려 ‘사업 준비’를 하느라 불철주야 바쁘시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이젠 별로라지만, 나는 동생이 그 별로라는 공무원에 붙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적은 사실상 없다. 그저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열심히 해 보라며 인강 수강권과 함께 선물했던 비싼 노트북이 카페 테이블 위에 고고한 자태로 올려져 있는 걸 인스타로 여러 번 봤을 뿐이었다. 한심한 놈. 요즘 공부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걸 과시하는 애들이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고 하루종일 민폐를 끼친다더니, 재희도 그런 족속이었나.
뭐 충분히 그럴만한 인간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아들의 실책은 인정하지 않은 채 공무원이라는 직업군을 깎아내리는 쪽으로 화제를 돌리며, 사업 자금의 출처 밝히는 걸 슬쩍 회피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말허리를 꺾었다.
“엄마, 뭐야. 솔직하게 말해봐. 통장 털었어? 설마 저번처럼 보험 약관대출 받은 건 아니지?”
“대출 안 받았어. 그냥 모아둔 거 조금 보탰어. 내 통장 턴다고 뭐 큰 거 나오는 것도 아냐.”
“아버지는 알아?”
갑자기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분노한다.
“니 아버지야 알든 말든! 그거 내가 모은 돈이다. 그리고 그냥 준 거 아니야, 빌려준 거야. 꼭 갚겠다고 했어. 재희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 누나는 일찌감치 좋은 회사 들어가고 순탄하게 잘 풀려서 비싼 아파트로 이사도 했는데 자기는 처지가 그 모양이니까 기가 죽나 보더라. 나도 속상하지 뭐. 두 놈이 다 잘 살아야 좋은데.”
한 번 뒤집힌 속이 또 한 번 뒤집히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될까, 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당해보니 알겠다. 제자리는커녕 눈까지 뒤집힐 것 같다는 것을. 그야말로, 주말의 포근했던 휴식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