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에 스카프까지, 얼굴과 목을 칭칭 감싸다시피 하면서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아침마다 중독자처럼 들이키는 아메리카노 대신 진한 유자차 한 잔을 마셨다. 뜨겁고 달달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자 오한이 조금 가시고 정신이 드는 것도 같았다. 그래, 3월 첫날인데 정신 차려야지. 우선 회사 계정에 로그인해서 이번 주 일정과 할 일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읽지 않았다는 굵은 글씨체의 제목이 여럿 보인다. 폰트 굵기만큼의 압박감이 모니터를 건너온다.
‘지난주 금요일에 분명히 메일함 다 확인하고 퇴근했는데!’
정말, 그 사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날아들었는지. 어느 인간이 지난주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오늘은 또 새벽같이 출근해서 일거리를 보내준 걸까. 하나하나 답장하고,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도 했다. 다들, 아직 잠이 덜 깼는데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걸린 업무 전화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라고 뭐 아침부터 이러고 싶겠습니까,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참았다.
그렇게 메일 건을 마무리하자마자 옆에서 기다렸다는 듯,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나의 상사 김프로께서 출장 다녀온 선물이라며 새로운 계약 건들을 한 무더기 안겨주었다. 어쩐지 월요일 아침부터 묘하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좀 수상하더라니. 2월 업무 마감 및 보고자료 작성에 신규 업무까지 검토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그 시간이 있었는데, 없어져 버렸다.
오후에는 심지어 시스템에 에러가 발생해서 신규 업체와 계약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의 시스템은 저번에 개발 담당자랑 같이 테스트까지 다 완료하고 업데이트한 건데, 하필 바쁠 때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늘 그렇듯 IT 헬프데스크에서는 담당자에게 전달해 줄 것이니 잠시 대기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기다리는 연락은 쉽게 오지 않고, 오히려 나를 찾는 전화와 메일만 계속되었다.
- 메일 하나 보냈는데 보셨나요?
- 금액 확인 부탁드립니다.
- 선적 건수 체크 부탁드릴게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안 그래도 싫은 월요일에 뭔가 할 일이 빼곡히 차 있다는 건 정말 환장하게 싫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런 스케줄이 고마웠다. 거의 쉴 시간 없이 업무와 전화와 그에 따른 약간의 긴장이 반복되면서 나는 잡생각을 할 틈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엄마와의 통화로 복잡했던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8)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