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잘 보이지도 않으며 말수 또한 급격히 줄어있었다. 지난달 딸에게 넋두리를 늘어놓던 시기, 그러니까 공터에서 나에게 목격되었던 때만 해도 그녀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두운 얼굴로 통화하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직업적인 미소를 띨 수 있었으니.
하지만 그즈음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저번에 나에게 털어놓았던 대로 딸에게 동생을 도와주도록 종용하는 거였을까, 아니면 그저 아들의 어려운 상황과 그걸 보는 자신의 아픈 마음을 토로하는 거였을까. 어쩌면 내게 말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아주머니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일하는 타임을 바꿨던 건지, 꽤 오랜만에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친 그녀는 얼굴이 쏙 빠진 채 창백한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녀의 통통한 분홍빛 뺨과 보기 좋은 곱슬머리는 손주를 둔 할머니답지 않게 귀엽기까지 한 것이었는데, 그날은 그냥 혈색 나쁜 노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록 저번에 내게 악의 없는 일격을 가해서 날 조금 아프게는 했지만, 그날 아주머니의 모습은 어쩐지 안쓰럽기까지 했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32층 분리수거장 청소를 막 끝내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려는 아주머니를 급하게 불러세웠다.
“아주머니, 잠시만, 잠시만요!”
나는 얼른 집에 들어가서 건강 음료 팩 몇 개가 포장된 작은 상자 하나를 쇼핑백에 담아서 나왔다. 그리고 그걸 그녀에게 꼭 쥐여주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닌데, 나이가 들어가는 건지 그녀를 보면 엄마가 생각나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이 아파트 다른 입주민들과 근본적으로 결이 같아질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에구… 이게 뭐예요?”
“요즘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저 가끔 야근할 때 먹는 건데 한 번 드셔보세요.”
“…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날 내가 아주머니를 부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준 쇼핑백을 받고 돌아서던 그녀가 갑자기 쓰러져버렸다. 평소에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비상계단 앞이었고, 자칫 아주머니는 차가운 계단에서 오랜 시간 방치되어 어딘가 잘못되거나 더 큰 일을 당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눈앞에서 누가 쓰러지는 건 처음 겪는 일이라 나도 너무 많이 놀랐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119를 누르고 그녀의 핸드폰을 열어보고 관리실에 연락해서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던 장면들이 띄엄띄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며칠 후 집에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1층 로비 담당 보안요원이었는데, 지금 잠깐 로비로 내려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청소 아주머니의 딸이라는 분이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금방 가겠다고 말했다. 아주머니의 안부도 궁금했지만 그 딸도 한번 보고 싶던 참이었다.
(1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