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1층 데스크 앞에 손을 모으고 어색하게 서 있던 아주머니의 딸은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옆에 안 계셨으면 어쩔 뻔했는지… 정말 고맙습니다….”
허리까지 숙여 가며 연신 인사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보통의 체격과 수수한 옷차림의 여자는 아주머니가 젊었을 때 이렇게 생기셨겠구나, 싶을 정도로 닮은 얼굴이었다.
“어머님은 좀 괜찮으세요?”
“네,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 거라는데, 그래도 그 즉시 응급실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셨을지 모르지요. 이런저런 검사 하고 계세요. 엄마도 너무 감사하다고, 퇴원하면 꼭 찾아가서 인사드리겠다고 하셨어요.”
쓰러지면서 어디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다행이었지만, 무슨 사정이었던 건지는 여전히 궁금해서 나는 딸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평소에 건강하셨던 것 같은데, 그동안 무슨 일 있었나요? 안 그래도 얼굴이 너무 안되어 보이셨거든요.”
여자는 작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제가 남동생이 있거든요, 걔는 결혼도 했고, 애가 둘이에요. 올케도 바깥일 하는 사람이고. 그런데 동생네 장모님이 갑자기 좀 편찮으셔서 조카들 봐줄 사람이 없었나 봐요. 엄마가 저한테도 부탁했는데 제가 사정상…… 엄마 부탁을 거절했어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청소 시간 바꿔가면서 손주들 봐주고 그러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던가 봐요.”
역시 그 일 때문이었다. 아주머니의 딸은 그래도 자기 엄마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울적해졌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며 ‘사정상……’ 이라는 말로 자기의 심정을 대신했다. 그러나 나는 여자로 하여금 힘든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게까지 한 그게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자기 애들을 돌봐주다가 엄마가 저렇게 되었는데 정작 나를 찾아온 사람이 그녀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것이 나를 조금 씁쓸하게 했다.
물론 그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병실에 누워 있는 아주머니를 간호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 할 수도 있고, 가족 대표로 누나가 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다 떠나서, 공터에서의 통화를 목격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녀에게 딸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텐데, 아주머니가 별로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던 그 딸이 내 앞에 나타나서 마치 다 자기 잘못인 양 이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팠다.
“제가 경황도 없고…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쿠키를 좀 구워봤어요.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여자는 작별 인사를 하기 전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작은 가게를 한다더니, 디저트 가게인가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여자는 내 동생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장님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아주머니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네, 지금 병원 다시 들어갈 거니까 꼭 전해드릴게요.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의 딸은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1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