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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무늘보 Oct 18. 2024

너의 자리 (13)

  재희 가게의 오픈식 날에는 가지 않았다. 분식집 인스타그램 속 사진으로 대충 구경한 매장 내부의 모습은 녀석의 말대로 인증샷 좋아하는 이십 대 여자 애들 취향이었다. 아무리 사장이 한심하더라도 어지간한 가게는 ‘오픈빨’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 굳이 그날 가서 북적이며 사진을 찍어대는 어린 애들 사이에서 치이고 싶지 않았다. 좀 더 본심을 말하자면, 엄마 노후 자금을 보태서 사장 놀이하고 있을 것이 뻔한 동생 놈과 내 앞에서는 한숨을 내쉬어도 동생 앞에서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 엄마를 한 번에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좀 잠잠해졌겠다 싶을 즈음 슬쩍 가게에 들렀고, 뜻밖에도 거기서 엄마를 만났다. 빗자루를 들고 온 힘을 다해가며 가게를 청소하고 있던 엄마는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흠칫 놀란 표정이다. 나도 놀랐던 건 마찬가지다. 지난번 통화 이후로 말을 처음 나눠본다.


  “… 여기서 뭐 하세요?”

  “아니 그냥 놀러 왔다가, 좀 지저분한 게 보이길래. 남자애들 눈에는 이런 게 잘 안 보이나 봐.”


  유사장은 카운터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유재희! 넌 뭐 하냐? 일 안 해?”


  잠에서 깬 재희는 엄마와 똑같은 표정으로 놀라면서 얼떨결에 내가 주는 걸 받아들었다. 꼴 보기 싫게도, 양손에 들린 무언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재희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어 누나 왔어. 뭐야 이건?”


  한숨과 잔소리를 깨물고 간신히 말을 꺼냈다.


  “공기 청정기. 크진 않아도 가게에 놓고 쓸 만은 할 거야. 봉투는 뭐, 너 필요한 데 쓰고.”


  팔로워가 200명이 채 안 되는 인스타의 몇 안 되는 댓글 중에서 ‘가게에 공청기 있으면 좋겠어요 사장님♡’이라는 코멘트가 눈에 띄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따위를 보는 게 아니었다고, 속으로 후회했다. 이 모습을 청소하던 엄마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번 노트북을 줄 때도 이런 표정을 봤던 기억이 난다. 한동안 내게 서운해했을 엄마는, 이제 밖에 나가서 똑똑하고 잘나가는 맏이가 역시 누나 노릇 톡톡히 한다며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엄마나 누나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을 유재희는 그저 좋아하고 있다.


  “아, 공청기 완전 필요했었는데. 고마워 누나. 밥 먹었어?”

  “밥은 먹었고, 공동 사장은 어디 갔어? 왜 넌 여기서 혼자 졸고 엄마가 청소를 하고 있는 거야?”



마지막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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