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의 대두와 대중의 외면
그러니 이렇듯 그 맥락에 대한 이해없이 미술관에 가서 표현주의나 신즉물주의 자화상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예술은 이제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의 영역이 아니라 이러한 그림이 나오게 된 맥락과 배경 뿐 아니라 그 사고의 근간이 되는 철학 사조의 흐름까지 알아야만 머리 속으로 그 가치가 이해되는 미학의 영역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신권이나 왕권이 정해주는 통일된 사조와 가치관이 사라지자 순수 예술은 잠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듯하였지만 곧 자신들 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아갔다. 이들은 이제 청중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돈이나 벌려는 상업적 시도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음악가들은 사람들에게 듣는 즐거움보다는 귀에 피가 나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12음 기법이니 무조음악이니 하는 현대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미술가들은 텅빈 캔버스를 걸어두거나 변기를 들고와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음악가들에게는 청중의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에 기반한 화음체계를 무너뜨리고 나만의 독창적인 작곡기법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마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존 이론을 반증하거나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야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학문적 입지를 구축하는 것처럼 음악가들 역시 기존의 음악 이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자신만의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어야 음악가들의 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 역시 에곤쉴레로 대표되는 표현주의쯤에 오면 아름다움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작가주의라는 말은 20세기 프랑스의 영화계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지만 이와 유사한 경향은 동시대의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작가주의에서 대중의 기호에 맞추는 것은 천박한 것이고, 자신만의 예술관을 표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이걸 잘해야 돈은 못벌어도 같은 집단에서 거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19세기 낭만주의 전성시대에 팝스타의 자리를 차지했던 순수음악은 대중들로부터 멀어져갔고, 그 자리를 재즈와 팝 같은 대중음악이 비집고 들어갔다.
이쯤 되면 왜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등장한 기라성 같은 클래식계의 슈퍼스타는 모두 작곡가가 아닌 연주자들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피아졸라 등이 20세기에도 스타 작곡가의 명맥을 이어가기는 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낭만주의와 인상주의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곡가들이지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막을 알린 선구자는 아니었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는 이런 유럽 본토의 작가주의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된 구소련의 작곡가들이었다. 이들 외에도 20세기 주요 작곡가 명단에 주로 루마니아나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과 같은 동구권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작가가 예술의 주체로 떠오른 서구와 달리 당시의 공산권에서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예술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중세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상에 충실한 음악만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작가주의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음악가 동무가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귀에 피가 나게 했다가는 무슨 꼴을 당했을지 뻔했다.
실제로 한 때 자본주의스러운 음악을 한다는 죄로 스탈린의 눈 밖에 났던 쇼스타코비치는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칭 음악애호가인 채고존엄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작곡하여 살아남았다.
스탈린에게 상까지 받은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듣다 보면 한 때 자신이 추노했던 독일의 하노버공이 영국의 조지 1세로 부임하는 기막힌 현실에서 필사적으로 수상 음악을 작곡했던 헨델이 떠오른다.
두 곡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 한번 벗어난 주군의 눈에 다시 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오선지를 채워가는 음악가들의 비장미가 느껴지지 않는가.
음악가들이 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장장 수백 년에 걸쳐 간신히 벗어난 음악하는 하인이라는 신분을 한큐에 돌려버린 공산주의와 스탈린이 사뭇 대단할 뿐이다. 피아졸라 역시 유럽 본토 음악계와는 한참 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소재로 음악을 만들었다.
고딕시절부터 바로크와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파까지 수세기를 클래식 음악으로 풍미했던 유럽 본토에서는 이제 적어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스타 작곡가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오늘날의 클래식계는 백여년 전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당대의 비르투오소 (간혹 작곡가 자신이기도 했다)들을 위해 기교의 극한을 달려가며 쓴 곡들을 누가 누가 더 잘 연주하나를 겨루는 연주자들의 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간혹 밀린 숙제하듯 현대음악을 녹음하는 스타연주자들도 여전히 19세기에 쓰여진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호하지 나만의 독창적인 예술관을 정립한 20세기 작곡가들의 현대음악을 즐겨 연주하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내 레파토리는 바로크에서 낭만주의까지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줄리어드 음대를 나온 존 윌리엄스는 스타워즈부터 인디애나 존스, 죠스, E.T, 쥬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해리 포터 등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영화음악은 모두 혼자서 만들어낸 거장계의 사기캐릭이다. 이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작금의 블록버스터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정통 클래식 음악 타이틀을 달고 내놓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에서 쉰들러 리스트의 주옥같은 멜로디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식으로 클래식 교육을 받은 윌리엄스 입장에서는 영화음악 같은 상업음악이 아닌 정통 클래식 음반을 낼 때는 오늘날 현대음악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라야만 주류 음악계의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스타 연주자들도 이 사람과 협연할 때 존 윌리엄스 바이얼린 협주곡 보다 다스베이더 테마나 쉰들러 리스트 테마를 더 즐겨 연주한다. 당장 유투브를 찾아보아도 눈을 지그시 감고 선율에 흠뻑 빠져든 모습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연주하는 거장들의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이 존 윌리엄스 바이얼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후대의 음악사가들이 스타워즈 음악을 어느 쪽으로 분류할지도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데이비드 가렛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비르투오소 중 한 명이지만 아예 클래식계의 현대음악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레드제플린이나 건즈 앤 로지즈의 락음악을 재해석해서 연주한다. 이 사람의 가장 대표적인 앨범 제목 자체가 ‘록의 혁명’ - Rock Revolution이다.
영화 파가니니에서 주연을 맡으며 정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 같은 신들린 연주를 보여주었던 이 천재 바이얼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에미넴을 듣다 보면 21세기의 연주자들이 얼마나 열정을 다해 연주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지 알 수 있다.
200년 전에 씌여진 카프리스를 나만의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도 물론 의미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세대를 거쳐가며 반복해나갈 어려운 작업이지만 미친듯이 연주할 새로운 곡의 등장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연주자들은 결국 그 해답을 클래식 음악계 밖에서 찾고 있다.
현대예술은 이렇듯 문화의 권력을 고용주에서 관객으로, 그리고 다시 작가에게로 돌려놓으며 대중에게서 멀어져갔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데카르트의 인식론에서 출발한 작가주의, 즉 ‘내가 연주한다 고로 음악이 존재한다’로의 방향전환은 초기 낭만주의 비르투오소들을 대거 탄생시키며 클래식 음악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딱 거기에서 그쳤어야 했다.
진과 선을 어깨에서 덜어내며 미에 집중할 자유를 얻은 예술은 결국에는 이 미美 마저 덜어내고 아름다움과는 무관한 작가만의 독창성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론이 이들을 부추기면서 이 둘은 서로를 우쭈쭈해가며 남들은 크게 관심없는 자신들 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제 드디어 예술 세계 밖에서 오랫동안 소만 키워오던 공감각자들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아름다움이 아닌 독창성이 예술의 핵심가치로 부상하자 남들과는 다른 감각을 가진 이들이 각광을 받는 세상이 오고야 만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술 세계는 공감각적 능력이 없는 대다수의 우리같은 관객들은 아무리 듣고 봐도 이해도 안되고 공감도 안가지만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어거지로 감탄을 쥐어짜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문이 되어버린 예술
이렇게 선을 넘은 음악은 음학이 되었고, 미술은 미학의 영역에 영원히 둥지를 틀어버렸다.
태고부터 있어온 신의 존재와 절대왕정의 등장은 분명 예술가들의 창의성에 족쇄로 작용했고, 신의 죽음과 시민사회의 발전은 근대 이후 예술의 자유를 가져왔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줄 절대자가 부재한 자유는 곧 방종으로 이어졌고, 예일대에서 예술철학을 가르치던 해리스의 말마따나 ‘텅빈 캔버스를 예술이랍시고 들이미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현대 예술의 대환장 파티는 바로 이 갈피를 못잡은 방종의 결과물이다.
예술의 역사를 수 천년으로 본다면 가장 최근의 백년은 후대의 예술사가들에게 철학이라는 멘토가 사라진 예술이 이산 저산 갈팡질팡 떠돌아다니다가 변기를 예술이라고 우기던 얼척없는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금 예술의 중심을 잡아줄 철학적 사유가 나타나야 하지만 이는 결코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이를 해낸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 정도였다.
그러니 메를로 퐁티 같은 20세기의 거장마저 스스로 그 철학적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나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바라기만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앞으로 나타날 철학은 화가를 자극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극 해조해조)’ 메를로 퐁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보니 20세기 후반의 질 들뢰즈 쯤에 오면 아예 ‘철학만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도 사유를 한다’는 신박한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얼핏 들으면 시녀도 아닌 한낱 도구에 불과했던 예술을 철학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고 띄워주는 것 처럼 보이지만, 들뢰즈의 이 주장은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그림만 그려오던 예술가들에게 철학계의 뜨거운 감자를 넘기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들뢰즈는 사유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해야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가에게 답을 제공해야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예술적 이념’이라는 신개념을 제안하며 수천년간 예술의 방향을 제시해온 철학의 부담을 덜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철학자의 희망사항일 뿐, 예술계는 아직 스스로 이 예술적 이념에 대한 답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예술을 자극하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기 까지 당분간은 갈팡질팡하는 오늘날의 예술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퐁티나 들뢰즈 정도로는 어림없고 또 다른 칸트나 헤겔의 강림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브람스가 죽은 지 백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드라마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지 ‘쇤베르크를 좋아하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러니 이 땅의 성악전공자들은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청중을 찾아 처음에는 그나마 비슷한 뮤지컬로, 그리고 이제는 트로트로 점차 장르를 바꾸고 있다. 베토벤의 후계자는 윤이상이나 존 케이지가 아니라 한즈 짐머나 엔리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 중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줄 요약: 이해도 안되고 감흥도 없다면 억지로 꾹 참아가며 듣고 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