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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블라스 언덕 - 이디아민과 고릴라

‘Harry Oppa, tell me the story one more time

해리오빠 그 이야기 또 해줘’


둘이 정원에 앉아 꽁냥거리는 꼴을 본 비키가 맥주병을 들고 밖으로 나오자 레미는 이제 입에 붙기 시작한 오빠라는 단어를 써가며 알제리 이야기를 재촉했다.


‘I mean the “Idi Ain story”

그거, 이디 아민 이야기 말이야.’


하필 아프리카에서 온 비키는 이게 왠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큰 눈을 끔뻑이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Vickey, you know Idi Amin, right?

비키야, 이디 아민이라고 알지?’


‘The late Uganda dictator? Of course, I do, but where does his name come from?

우간다 독재자 말이야? 알지. 근데 갑자기 왠 이디 아민?


‘Once upon a time in Algeria, where I often visited…

옛날 옛날에 내가 알제리라는 나라에 자주 가던 적이 있었는데….’


전설적인 우간다의 독재자 이름이 등장한 것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인 알저에서의 일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우 기묘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이미 전역한 예비역 장성인 데도 굳이 자켓 속에 권총을 차고 등장한 알제리의 전직 보안 사령관과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그의 아들, 그리고 한국에서 온 기업인 몇이 이 자리를 주선한 대사관 관계자들과 함께 지중해가 내려 보이는 운치 있는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머리가 벗겨지고 풍채 좋은 이 전직 보안 사령관은 직업적인 유사성까지 겹쳐 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자리의 취지를 굳이 설명하자면 개발도상국의 유력자는 자신의 배경을 이용하여 외국기업과 뭔가 이권사업을 도모해 보려고 했다. 그래서 혹시나 아들 취업자리까지 챙겨볼까 겸사겸사 프랑스에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귀국한 막내 아들을 데리고 이 자리에 나왔던 것이다. 


당시 일년에 절반 가까이를 알제리에 상주하며 이래저래 투자 기회를 검토하던 해리 로서도 역시나 유력자의 배경을 활용할 지름길이 있을까 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중간에 선 대사관은 이런 자리를 주선하면서 주재국 유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또 한국기업의 현지 활동에 도움을 주었다는 보고서 한 장을 작성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알베르 까뮈의 고향 보다는 축구 선수 지네디 지단의 고향으로 더 잘 알려진 알제리는 자원 대국이지만 자원은 많고 힘은 없는 나라의 종특인 외세 간섭과 내부 권력 다툼으로 독립 이후에도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군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사실 이런 나라에서 인허가가 필요한 사업은 현지 유력인사를 통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한국만 해도 통신 사업에 쓰이는 주파수의 사용이 매우 투명하게 관리된다. 정부에서 사용 기한을 정해 놓고 주파수를 경매에 붙이고, 통신사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수 조원의 돈을 내고 입찰을 한다. 돈을 내고 낙찰을 받아도 정부 지시대로 사업을 안하면 회수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국가로 갈수록 주파수 관리가 엉망이다. 북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들은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어디서 누가 어떤 용도로 어느 주파수 대역을 쓰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접한 튀니지에서는 어느 주파수 대역에서 사업이 가능한지 파악이 안되다 보니 튀니지 정보통신부에 아예 특정 주파수 대역을 싹 다시 걷어서 재분배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주파수 사용에 많게는 수 조원을 내는 한국과 달리 돈 내고 쓰는 사람이 없는 주파수 대역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주파수 관리청과 실사를 하면서 상황을 파악해보니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황금 주파수 대역을 경찰서에서 무전 용도로 쓰고 있었고, 다른 지역으로 가면 군부대가 쓰고 있었다. 이름 뿐인 회사들이 선점한 주파수 대역도 많았다. 


이름 뿐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주파수는 문제가 더 심각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현직 통신장교들의 소유로 되어 있다. 이런 개발도상국의 국민이나 언론이 주파수 사용 이슈까지 관심을 갖고 따지고 드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설명하기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이 분야의 빠꼼이면서 권력까지 갖고 있는 통신장교 출신들이 사업권을 선점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한 통신 사업을 실제로 할 생각은 없다. 이들의 목표는 외국 기업 하나 호구 잡아서 주파수와 사업권을 팔고 그 돈으로 가족들과 미국 이민을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의 해리는 이런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즉 유력한 호갱 후보인 셈이다.


물론 첫 만남부터 사업이야기를 꺼내는 초짜는 없다. 노을이 지는 지중해를 바라보는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식사는 누구와 함께 하건 언제나 멋진 경험이다.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막론하고 지중해 연안의 음식은 그게 그리스나 이스라엘이건 알제리나 튀니지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방인에게 좋은 의미에서 모두 비슷하게 느껴졌다. 


피자의 원형이 이렇게 생겼을 것 같은 얇고 둥근 빵이 나왔고, 어디를 가나 신선한 올리브가 듬뿍 있었다. 중동 쪽으로 갈수록 양고기와 후무스의 비율이 올라갔다. 


지중해에서 잡은 생선도 빠질 수 없었다. 지중해를 북쪽으로 접한 알제리는 의외로 생선값이 비싼데 여기에는 어선들이 기름이 부족해 조업을 자주 못 나간다는 현지 직원의 슬픈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사하라 사막의 대부분을 차지한 자원 대국의 아이러니이다. 


여기에 와인을 빼 놓을 수 없다. 성경 곳곳에 포도주가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와인의 역사가 기원전 1,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정한 와인의 종주국이다.  이스라엘에서 현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바로 ‘야 우리가 4천 년째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같은 말이 나온다. 


지중해의 자연환경을 공유하는 인근의 알제리와 튀니지 역시 오랜 프랑스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꽤 가성비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 그러니까 프랑스나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어느 나라를 가나 다 자기 나라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지중해의 석양과 와인이라는 로맨틱한 분위기에 어울리게도 전직 보안 사령관께서 왕년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지네디 지단의 나라 알제리 아닌가. 이제 곧 알제리 보안사에서 사령관님 헤트트릭하신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이다. 


하지만 장군님이 꺼낸 이야기는 뜻밖에도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에 관한 일화였다. 


전직 보안사령관이 초급장교 시절에 우간다의 대통령, 이디 아민이 알제리를 국빈방문 했다고 한다. 아민의 전용기가 공항에 도착한 후 대통령의 짐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국가 원수의 짐이라도 모두 엑스레이 검색을 거쳐 반입이 된다. 그런데 한참 짐이 반입되던 도중에 현장의 부사관 하나가 당시 공항 보안 담당자였던 자신에게 헐레벌떡 뛰어왔다고 한다. 


‘저기, 그게, 짐 보따리 안에 시체가 있습니다.’


깜짝 놀라 검색대로 달려가보니 과연 커다란 나무 상자 안에 사람 시체가 누워있는 것이 엑스레이 상에 보였다. 외교 관례상 국가원수의 짐은 절대 손대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시체를 확인도 안하고 자국 영토에 반입을 허락할 수는 없다. 


혹시 비행기 안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상자 안에 넣어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죽은 사람을 외교 현장에 들고 온 것일까? 이디 아민은 현직 대통령 시절부터 살인은 물론이고 식인까지 일삼는다고 이미 악명이 높았다.


간혹 발생하는 현장 책임자의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짐을 개봉했다가 혹시 모를 외교 분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모른 척 통관시켰다가 행여 생길지도 모를 훗날 더 큰 소동의 불씨를 제공한 원흉이 될 것인가? 


미래의 보안사령관은 여기서 큰 고민에 빠졌다. 잘못하면 자신의 군 커리어가 이대로 끝나고 옷을 벗을 수도 있는 판단이다. 현장의 병사들은 모두 책임자인 자신의 얼굴 만을 쳐다보고 있다. 아민 일행은 이미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상자를 열어라.’ 


이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 아니면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지는 열어 봐야 아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사령관은 씨익 웃으면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Guess what was inside

상자 안에 뭐가 있었게? ‘


뭔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가 결국 별까지 달고 이 자리에서 한국사람들과 어울려 이디 아민과 시체 이야기를 가지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잠깐 생각해 보니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하고, 사람이 아닌데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해리가 한마디 던졌다.


‘Was it a kind of ape?

혹시 유인원 아니에요? ‘


‘Voila, c'était la viande de gorille fumée

그거 훈제한 고릴라였어.’


한바탕 웃고 난 사령관은 프랑스어로 맞췄다고 했다. 아들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지만 애초에 부자가 프랑스어로 하는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해리는 티는 내지 않고 속으로만 알아들었다. 


이디 아민이 상자에 넣어온 것은 고릴라였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여주었던 이 독재자는 아프리카의 온갖 야생 동물을 먹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고릴라였다고 한다. 


고릴라 고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외국 순방을 할 때는 일종의 초벌구이를 한 훈제 고릴라를 가지고 다녔다. 한국 사람들이 고추장과 김치를 들고 해외여행 가는 것을 아프리카 독재자 스케일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레미는 한번 더 빵하고 폭소가 터졌다. 비키도 웃기는 웃는데 아주 즐겁기만 한 표정은 아니었다. 대놓고 아프리카를 희화하는 농담은 아니고 과거의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또 정작 아프리카 흑인이 듣기에 썩 웃기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We really don’t eat gorillas in Africa, 

보통 아프리카에서 고릴라를 먹지는 않지’


‘I know, Amin being Amin

알아. 아민이 아민했지’


분위기를 눈치 챈 레미가 얼른 한 마디 거들었다


‘I guess beef is the best meat, Harry and I had a steak dinner, today

뭐니뭐니해도 소고기가 최고지. 오늘 저녁에 우리 스테이크 먹었다’


‘Come on, you eat escargot back home

뭔 소리야, 넌 달팽이 먹쟎아’


‘Quoi?’ quel goút a la viande du chien?

뭐라니, 개고기 맛은 어떤데?’


레미는 농담을 하면서도 선은 넘지 않았다. 고릴라 고기에 이은 개고기 이야기가 비키에게 어떻게 들릴지 몰라 그 부분은 프랑스어로 한 것이다. 눈치 빠른 해리가 달팽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BTW, do you know Koreans eat escargot a lot as well? I mean, escargot is very popular in Korea

그나저나 한국사람들도 달팽이 먹는 거 알아? 한국에서도 진짜 많이 먹어’


‘Vraiment? I didn’t know that’

진짜? 처음 듣는데.’


‘It is actually escargot from the sea, we call it 골뱅이, but I bet they are the same species

골뱅이라고 바다에서 나는 달팽이인데, 아마 비슷한 종일 걸’


‘Ça alors, J’aime escargot, I should try the sea escargot someday

진짜? 나 달팽이 진짜 좋아하는데, 그 바다 달팽이라는 것도 한번 먹어봐야겠다’


오묘해진 분위기를 돌리는 데에는 셀프디스가 제격이다.


살짝 표정이 어색해졌던 비키도 이제는 활짝 웃으며 몬도가네 배틀에 동참했다.


‘Have you guys ever tried Giraffe before?

너네 기린은 먹어봤냐?’


‘Oh-la-la, Giraffe? Mais non, 

엄마야, 기린? 으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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