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 어쩌면 직장인의 숙명

점심 메뉴 고르기

by 노서방

우리 부서 S과장님의 습관이 하나 있는데, 11시가 되면 정적을 깨고 질문을 던진다.


오늘 먹먹냐?


보통 구성원들이 일에 한참 몰입해 있을 시간이라 이 질문에 누구 하나 대답을 바로 하기가 힘들고 마가 뜬다. 그러면 과장님은 침묵을 깨고 다시 물어보신다.


점심 안 먹을 거야?


채근을 이기지 못한 구성원 모두가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사내 SNS에서 메뉴 고르기 회의를 시작한다. 타자기가 불타오르며 메뉴 선정이 시작된다. 중식? 돈가스? 제육? 아니야. 비 오니까 수제비? 열띤 토론 끝에 구성원의 극적 합의로 메뉴를 하나 골라도 과장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새로운 걸 원하시는듯하다.


같은 고민을 하는 직장인에게 팁이라면, 나는 이런 패턴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게 답답해 어떤 날엔 점심메뉴 고르는 엑셀 파일을 만들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갔던 식당을 모두 하나의 파일에 모아서 랜덤함수와 max 함수 두 가지로 만들었는데, 꽤나 그럴듯하지만 지나치게 렌덤 한 메뉴가 나와 과장님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식?


비 오는 날에 피자를 추천해 버리니 과장님이 싫어할만하다. 그래서, 엑셀을 조금 보완해 비 오는 날 시트 , 비 안 오는 날 엑셀 시트, 그리고 추운 날과 더운 날 메뉴를 따로 시트에 정리해 만들어보니 꽤 그럴듯하게 맞아들어간다. 최근까지 과장님 질문에 대비해 엑셀의 랜덤 선택에 맡기곤 했는데, 세 달 정도 잘 써먹다가 새로운 메뉴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금 질문이 비수같이 날아와 박힌다. 사무실은 다시금 과장님의 머먹냐는 질문에 싸늘하다.


지긋지긋한 메뉴 고르기는 어쩌면 직장인의 숙명일지 모른다. 밥이라도 잘 먹어야 오후에 힘을 낼텐데, 메뉴고르기에서 이미 지쳐버릴 때가 있다. 어쩌다보니 메뉴 고르기 당번이 되어버린 요즘, 잘해야 본전인 지겨운 업무가 또 늘어난 듯하다.


지겨워 정말~ 누가 좀 살려줘요. 정답을 알려줘요!!

keyword
이전 07화우당탕. 노트북을 집에 두고 출근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