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만 불의 딸아이,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기적의 삶

by Pelex

딸아이는 올해 서른아홉입니다.

나는 딸을 ‘육백만 불의 아가씨’라고 부릅니다.

지금까지 들어간 병원비가 60억 원, 미화로 환산하면 천만 불이 훌쩍 넘었기 때문입니다.

딸은 국내에 20여 명뿐인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2천여 명 남짓 진단되는 병입니다.


한 달에 약값만 3천만 원. 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시절, 대부분의 비용은 사비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약이 있어도 너무 비싸 손을 쓸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딸이 유치원에 들어갈 수만 있어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결국 성악과에 진학했고, 무사히 4년을 마쳤습니다.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습니다.

그 모든 중심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병을 알게 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묵묵히, 복지부와 국회, 구청, 학교를 찾아다니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고, 결국 의료보험의 문턱을 조금씩 낮추었습니다.

지금 수많은 희귀병 환자들이 그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던 딸이 5년 전부터 코마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말도, 움직임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내는 매일 아침 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합니다.

“딸내미, 잘 잤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아내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종종 외면합니다.

가끔 이유 없이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합니다. 너무 헌신적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프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는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사도, 가족도 회복은 어렵다고 했지만, 아내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딸을 지켜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청력도 약해지고, 무릎도 자주 아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주 새벽 성당에 나가 기도합니다.

기도는 단 하나입니다.

“다음 주일에도 성당에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습니다.

형제, 친구, 지인…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아내의 삶을 누가 글로 쓴다면, 몇 편의 드라마와 장편소설이 나올 겁니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어려움을 말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세상에 말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우리 부부도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 이후가 너무 두렵습니다.

이제 아내는 혼자 딸을 돌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엊그제는 딸의 간병을 맡아주던 이모님도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이제는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부디 이 글이 동정이나 연민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코마 상태”는 “뇌사”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불분명한 채, 연명치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보호자가 쓰러지고, 고통은 끝이 없습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는 국가와 제도가 나서야 합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또 누군가에겐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기억해 주십시오.

지금도 누군가는, 이 고통의 길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2025년 6월 26일

한 환자의 아버지,

000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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